대형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모 전직 장관으로부터 최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용건은 "거액을 예금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약속 장소인 서울 강남 모 호텔의 커피숍에 나타난 사람은 70세가량의 노부인이었다. 자신을 강남 모 주상복합아파트에 산다고 밝힌 이 노부인은 "금융실명제 때 실명으로 전환하지 못한 자금이 10조원가량 있다"며 "3.8%의 선이자를 주면 한국은행 전산망을 통해 은행 계좌로 입금시키겠다"고 제안했다. 이 임원은 "황당한 얘기였지만 소개해준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 '돈을 입금시켜 주시면 곧바로 선이자를 드리겠다'고 정중히 말하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최근 은행이나 사채시장 등에 이처럼 괴자금과 관련된 얘기들이 또다시 무성하게 흘러다니고 있다. 명동 사채시장에서 일하는 황모 사장(45)은 얼마 전 한 변호사로부터 '신도림자금'이라는 이름의 괴자금에 대한 투자중개를 부탁받기도 했다. 내용인즉슨 "정치자금 2000억원이 있는데 차명으로 분당 쪽에서 진행 중인 건설사업에 투자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밖에 사채시장에서는 '달러 구권을 컨테이너 1개 분량만큼 갖고 있는 사람이 환전해 줄 전주를 찾고 있다"는 등의 '믿거나 말거나'식 괴자금설도 떠돌고 있다. 이 같은 괴자금에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대부분 사기와 관련돼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