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방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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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뒷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앞뒷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제비 한 마리가,
집을 관통하고 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 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리려는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
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
손택수 '방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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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풀어놓기'도 이쯤 되면 예술에 가깝다.
한여름 대청마루에 누웠을 때 등에 전해오는 서늘함.
모처럼 그 감각을 즐기고 있던 중 제비란 놈이 미사일처럼 집을 관통하며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니.
대청마루와 제비의 하얀 아랫배와 서늘한 바람이 힘을 합쳐 더위를 단숨에 밀어내버리지 않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 가끔 이런 완벽한 무방비 상태에 스스로를 놓아둬보면 어떨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