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블루 칩 작가'(인기있는 A급 작가)인 장욱진(1917~1990)화백이 평생 추구한 그림세계다.


그는 실제로 지인들에게 "작은 그림은 고집이 아니다.작은 그림은 친절하고 치밀하다"며 '소품 예찬론'을 펼쳤다고 한다.


장 화백의 체구는 작은 편이 아니었다.당시로선 큰 편에 속하는 키 172cm에 어깨가 딱 벌어진 장골로 양정고교시절에는 육상과 빙상선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장 화백은 겉보기와 달리 작은 그림들을 주로 남겼다.


생전에 800여점의 유화를 제작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720여점이다.


이 중 가장 큰 게 고작 15호에서 20호다.


장녀인 경수씨(60)는 "어릴 적에 내 키보다 큰 작품과 '키대기'를 한 기억이 있다"며 "80호나 100호 정도 된 것 같은데 현재 남아 있지 않다"고 회고한다.


부산공간화랑의 신옥진 대표는 장 화백의 스케일을 알 수 있는 일화를 들려준다.


"70년대 후반쯤 선생님을 모시고 태종대를 방문했죠.자살바위 앞에 서서 '선생님! 앞에 있는 바다가 태평양으로 이어집니다'라고 했더니 '난 크고 광대한 게 싫어.조그만 게 좋아'하시면서 자갈치시장가서 소주나 먹자며 차로 들어가시더군요."


1951년작인 '자화상'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종이에 유채로 그린 가로 10.8cm,세로 14.8cm 크기의 손바닥만한 그림이다.


1호보다 작아 보통 '0호'로 불린다.


'6·25' 때 고향인 충남 연기에 머물며 벼가 한창 익은 가을의 동네 풍경을 담았다.


노랗게 물든 들판 위에 서양 양복 차림의 작가와 그를 뒤따르는 개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장 화백은 지인들과 그림들을 서로 주고받곤 했는데 하루는 한묵 선생(91·파리거주)이 자화상을 달라고 해 줘 버렸다고 한다.


한 선생은 이후 도불(渡佛)하면서 이 그림을 누님에게 맡겼다.


그 누님의 아들이 73년께 프레임을 고치려고 인사동의 한 화랑에 가져왔는데 화랑 주인이 첫눈에 장 화백 그림임을 알고 "당신이 왜 이 그림을 갖고 있느냐"며 뺏어 장 화백에게 가져왔다.


화가는 20여년 만에 자화상을 보자 반가워 즉시 새 그림을 그려 주고 자화상을 찾게 됐다고 한다.


경수씨는 지난 6월 초 서울에서 한묵 선생을 만났다.


한 선생은 그의 손을 잡고 "그때 그림을 다시 가져갔다는 말을 듣고 무척 섭섭했었다"며 "하지만 갈 곳에 갔다"며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자화상'은 도난을 당한 적도 있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대표가 들려주는 에피소드.


79년 10월 장 화백의 화집 출판을 기념하는 회고전을 하루 앞두고 전시장에 있던 '자화상'이 돌연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 사장은 며칠 동안 수소문한 끝에 이 소품을 당일 전시장을 방문했던 모회사의 N 회장이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성북동에 있는 N 회장 집에 쳐들어갔다.


박 사장은 N 회장을 보자마자 "회장님! 내놓으시죠"라고 다그치자 그는 장롱 깊은 곳에 숨겨놨던 그림을 꺼내 보여주면서 너무 맘에 들어 그랬다며 "내게 제발 팔라"고 오히려 부탁을 했다고 한다.


박 사장은 "가족이 절대로 팔 수 없는 그림이니 포기하십시오"라고 말한 후 '자화상'을 되찾아왔다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유족은 이 그림을 빌려줄 때마다 "그림이 워낙 작아 없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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