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작가 황주리.여자에게 나이를 물으면 실례지만 그녀에겐 특히 그렇다. 하지만 어쩌랴,흘러가는 세월을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화력(畵歷)이 벌써 25년째인 그녀도 이제 쉰 문턱이다. 황씨가 오는 24일부터 서울 관훈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스물다섯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전시 테마는 '세월'.작가가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특별한 애정을 갖고 그려 온 모노톤의 흑백 그림들을 선보인다. 최초의 흑백 그림인 80년작 '데드마스크'를 비롯 원고지 위에 그린 86년작 '가면무도회',애견을 의인화한 '자화상' 시리즈 등 50여점이 출품된다. 이와 함께 강가에서 모은 조약돌에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네 풍경을 새긴 '돌에 관한 명상' 시리즈도 처음 선보인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원색 그림들은 제가 대여섯 살 때부터 오랫동안 그려 온 익숙한 것이라면 흑백 그림은 어른이 된 후 화면에 등장한 색깔입니다." 원색과 흑백이라는 두 세계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작가의 흑백 그림은 87년 뉴욕으로 건너가 도시문명의 중심지에서 살며 느낀 감정을 모노톤으로 풀어낸 '맨해턴 블루스'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메마를 대로 메마르고 황폐해진 이 시대의 고독한 개인들의 모습을 문명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뤘다. 최근의 흑백 그림들은 이런 시각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불독인 애견 '베티'를 의인화하여 그린 30여점의 '자화상' 시리즈는 그녀 예술세계의 특징이기도 한 유머와 해학이 더욱 빛을 발한다. 현대문명이 못마땅하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지만 작가는 역설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공간으로 재창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듯이 그림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됩니다." 황씨는 이번 개인전을 기념해 지난 4년간 틈틈이 써 온 산문집 '세월'(이레 간)도 함께 출간할 예정이다. 9월12일까지.(02)725-102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