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병률씨(38)의 여행산문집 '끌림'(랜덤하우스중앙)은 시각과 청각,촉각을 함께 자극한다. 지난 10년간 50개국,200여 도시를 여행했던 그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의 흔적들을 '마음의 행로'에 따라 펼쳐보인다. 여행정보나 현지 가이드에 렌즈를 들이대는 게 아니라 '떠남'과 '끌림' 그 자체를 섬세한 감성으로 포착한 것.그러면서 삶의 뒷면에 가려진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때 내가 본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눈이 맵다.' 그는 첫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의 제목처럼 늘 '여행 중'이다. 스무 살 되던 해부터 카메라와 타자기에 매혹됐던 그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 속에 웃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카메라에 담고는 돌아와 타자기 앞에서 그 추억을 활자로 찍어낸다. 이번 책에는 목차도 없고 페이지도 없다. 그냥 아무데나 펼쳐 읽으면 된다. 여행이 바로 그런 거니까. 손가방에 쏙 들어갈 만큼 작은 사이즈,초콜릿으로 흘려 쓴 남미 시인의 시를 점자처럼 장식한 책표지의 오돌도돌한 질감도 좋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의 여행 기록은 '내 길에 당신도 함께 해줬으면 한다'는 구절로 끝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어딘가로 가기 위해 지도 위에서 서성대는 시인의 등 뒤로 '짧지만 울림이 깊은 영혼의 그림자'가 길게 비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