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고이즈미의 '개혁 집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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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국이 시끄럽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정공사 민영화 법안 부결을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해 하원격인 중의원을 전격 해산,일본 정치권을 총선정국으로 몰아넣은 탓이다.
이에 대해 대다수 일본 언론들은 '자민당 자폭' 등의 표현을 사용,고이즈미의 결정이 무모했음을 지적했다.
당장 올해로 창당 50년을 맞은 자민당은 총재의 '깜짝 카드'로 9월11일 총선에서 정권을 내놔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10년 장기불황에서 탈출하고 있는 일본 경제가 정치권의 불확실성에 발목을 잡힐 것이란 우려도 높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우정공사 민영화가 일본 정치권을 이렇게 흔들 만한 비중이 있는 지에 의문이 간다.
수신액이 360조엔(약 3260조원)에 이르고 관련 종사자가 28만명에 이르는 우정공사지만,그 개혁을 놓고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의 33년 정치 생명을 걸 만한 사안인지는 아리송하다.
실제 일본 국민들도 우정공사 개혁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다만 그가 정치인으로서 지금의 총리까지 오르는데 우정사업 민영화라는 공약이 가장 크게 어필했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는 우정공사 민영화에 대해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야당은 물론 자민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아 부결이 뻔한 상황에서도 표결강행이란 초강수를 선택했다.
그의 '밀어붙이기식' 개혁이 일본 정국을 혼돈에 빠뜨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우정공사 민영화법이 부결되면 중의원을 해산시키겠다"며 상황을 외길로 몰아 갔다.
배수진을 치면 반대파들이 돌아설 것이라는 다소 '순진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2001년 고이즈미의 총리 등극에 결정적으로 힘을 보탰던 모시 요시로 전 총리가 표결 하루 전 "법안부결과 중의원 해산을 연계시키지 말라"고 간곡히 요청했으나 고이즈미는 이를 묵살했다.
부결 후에도 그는 "우정공사 개혁에 반대하는 야당을 국민들이 지지할 리 없다"며 "다음 총선에 과반수 의원을 확보해 민영화법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쯤되면 밀어붙이기식 개혁보다는 '개혁 집착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개혁'은 고이즈미를 총리로 만들어 준 대표적 캐치프레이즈였다.
이런 정치적 배경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는 개혁 강박증에 시달리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에게는 '개혁=절대선(善)'이란 등식이 박혀있는 지도 모른다.
정치위기 때마다 신사참배 독도문제 등 미묘한 민족정서를 자극해 인기를 만회한 것도 고이즈미식 정치의 특징이었다.
누군가 '정치는 둥근 항아리에 담긴 물을 네모난 바가지로 퍼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네모난 바가지로는 물을 모두 퍼낼 수 없듯이 항아리 바닥에 약간의 물을 남겨두는 지혜와 여유는 정치지도자가 갖춰야 할 필수덕목이다.
이번 사태가 고이즈미식 '몰빵형 정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