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으로 가자] 진대제 정통부 장관 인터뷰 - 공공혁신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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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이 '싱가포르에서 배운다'를 연재한 이유는 공공부문의 혁신이 그만큼 중요해서다.
개별 기업들도 열심히 뛰어야 하지만 정부나 공공부문이 블루오션을 개척해 낸다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클 것이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을 인터뷰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가 민간(삼성전자 CEO)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통신부를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어서다.
실제 정통부는 지난해 정부업무 평가에서 24개 중앙부처 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주 광화문 정통부 청사에서 진 장관을 만나 그의 경영철학을 들어 봤다.
▶삼성전자 재직 당시 추진한 '와우(Wow) 프로젝트'를 정통부에서도 적용하고 있다는데.
"와우 프로젝트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한마디로 경쟁이 없는 상품을 만들자는 것이다. 노트북 컴퓨터 센스Q가 첫 작품이었다. 정통부에서도 희한한 것을 많이 하고 있다. 장관 부임 이후 제일 먼저 한 일은 딱딱한 회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첫 전략 워크숍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발표하라고 했다. 처음엔 어려워했지만 정보통신진흥국의 경우 통신업체를 학생,정통부를 교장으로 설정한 단막극을 발표했다. 스스로 그만큼 창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다 같이 놀랐다."
▶정통부 업무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데.
"정책관리제도(GPLCs)와 CEO 미션제가 새롭게 도입한 방식이다. GPLCs는 정책 입안부터 집행,평가까지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CEO 미션제는 장관이 간부들에게 주요 정책에 대한 과제를 부여하고 추진 실적을 평가에 반영하는 제도다. 모든 것을 실행 중심으로 바꾼 것이다. 예를 들면 정보화기획실장에게는 매년 스팸 메일을 절반으로 줄이라는 과제,기획관리실장에게는 예산 항목을 10% 줄이라는 과제를 줬다. 결과적으로 2003년 하루 50통이었던 스팸 메일이 지난해 말에는 13.8통으로 줄었다. 예산 항목도 15% 축소,예산을 6% 줄였다."
▶공공부문 혁신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책임경영 같은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해 일하는 방식을 바꿀 수도 있고 정부 스스로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 정통부의 'IT839 전략'은 정부가 새로운 역할을 찾아낸 경우다. 선진국도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오는 9월 영국에서 열리는 유럽 IT(정보기술) 장관회의에서 새 역할모델에 대해 기조 연설을 할 예정이다. 사실 국가가 산업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시대는 지났다. 그럴 경우 불공정 지원으로 국제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IT839는 산업과 관련된 서비스,인프라를 적극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방식은 국제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도 후방 산업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 정부의 블루오션인 셈이다."
▶이전의 산업 정책과는 어떻게 다른가.
"와이브로(휴대인터넷 시스템)나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서비스의 상용화 과정을 보자. 먼저 통신업체나 방송사업자가 투자해 인프라를 깔고 이어 단말기,소프트웨어업체도 관련 제품의 개발과 판매에 나서면 새로운 산업이 창출된다. 다른 나라가 우리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하도록 국가 마케팅을 강화하면 수출도 가능하다. 이전에는 CDMA 등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표준을 가져다 사용하는 데 그쳤다."
▶정통부가 참여정부의 CIO(Chief Information Officer)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되나.
"그렇다. 일의 프로세스 혁신에 대한 총괄은 행정자치부가 하며 정보의 유통, 공유, 처리는 정통부의 몫이다. 정부의 통합전산센터도 정통부가 운영한다."
▶정부 부처 간 협력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디지털국력 강화 과제로 추진 중인 지능형 교통시스템(ITS)의 경우 건설교통부 경찰청 지방자치단체 등이 관련돼 있어 조율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는 여러 사람이 공유해야만 가치가 높아진다는 논리로 설득해 일을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추진하는 것인가.
"정보통신 분야에선 다른 나라를 벤치마킹할 게 많지 않다.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이 다른 나라에 없을 수도 있다. IT 부문만큼은 앞서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치 혁신을 계속해야 한다."
▶정통부의 혁신 작업이 다른 부처와 가장 크게 차이나는 점은.
"추구하는 목표에 있어 차이가 있다. 다른 부처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개선 또는 하고 있는 일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반면 정통부는 그것과 아울러 새로운 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부처 혁신도 일 잘하자는 것에서 고객·시장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보는데.
"공무원들에게 늘 시장 중심, 현장 중심으로 일하라고 강조한다. 웬만하면 직접 현장에 가 보게 한다. 산업정책 담당 공무원들은 매일 중소기업 관계자들과 만난다. 현장에서 듣는 얘기가 정책에 접목되고 있다. 대민 접촉이 없으면 혁신에도 한계가 있다."
▶한경이 싱가포르 사례를 다룬 것도 새로운 가치 창출에 힘써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싱가포르 항만의 배 하역시간은 네 시간 정도면 된다. 반면 우리는 며칠 걸리는 경우도 많다. 네 시간 안에 하역하자는 것은 싱가포르의 국가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샴 쌍둥이를 무료 수술한 것도 의료 허브로 가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의 일환이다."
▶싱가포르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문제로 아귀다툼하는 게 제일 답답하다. 다른 나라에 갔다 오면 정신이 번쩍 든다. 최근 해외 주재관을 중국으로 불러 회의를 개최했다. 낮에는 기업,공단을 둘러보고 밤에는 회의를 했다. 3박4일간의 결론은 스피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블루오션을 창출하기 위해서도 남들보다 시간적으로 빨라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할 수 있다. 블루오션 창출은 타이밍 싸움이다."
▶블루오션 전략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전략적 움직임(strategic move)을 지속적으로 잘하자는 게 블루오션 전략의 요체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그에 대응하는 전략적 움직임을 계속 잘해 나가자는 게 핵심이다. 기업들은 가치 혁신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화,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CEO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직원들을 격려하는 치어 리더가 돼야 한다."
▶싱가포르의 가치혁신실행단(VIAT)같은 조직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가.
"VIAT 얘기는 김위찬 교수에게서 들었다. 싱가포르가 1인당 국민소득을 현재 3만달러에서 5만달러로 높이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연구하는 조직이다. 우리도 국민소득을 2만,3만달러로 올리려면 뭘 바꿔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담=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정리=송대섭 기자·사진=양윤모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