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불쌍한 두산 종업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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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의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동생인 박용성 회장측과 형인 박용오 전 회장측이 앞다퉈 상대방의 비리를 터뜨리고 있어서다.
그간 재계의 형제 간 갈등을 수없이 많이 보아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형과 아우가 비리를 낱낱이 터뜨려가며 이전투구를 벌이기는 처음이다.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싸움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할 뿐이다.
지난달 21일 시작된 두산가 형제들의 다툼은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듯했다.
당초 박용오 전 회장측이 검찰에 낸 진정서가 워낙 메가톤급이어서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모든 것이 가려질 '진실 게임'의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화해설까지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두 형제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폭로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동생이 지난 8일 형을 겨냥해 두산산업개발의 분식회계를 고해성사하자 10일엔 형이 동생의 부적절한 회사와의 금전거래 관계를 폭로하고 나섰다.
두산산업개발의 유상증자에 박용성 회장,박용만 부회장 등의 경영권 방어와 세습을 위해 회사가 납입자금을 대출해주고 이자 128억원까지 대납해줬다는 내용이다.
또 직원들에게도 각각 수천만원을 대출해 회사 주식을 사들이도록 한 뒤 주식 처분권한 일체를 회사에 위임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주식을 차명관리해왔다는 것이다.
잇단 폭로전에 박용성 회장측의 대응도 옹색하기만 하다. 5년간 나몰라라 팽개쳐뒀던 유상증자 대출금 이자 대납건을 지난 5일 처리했던 것도 그렇지만 "박용오 전 회장은 증자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의 두 아들이 참여했다"는 고자질식의 '기가 막힌 반응'뿐이다.
그러나 기가 막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두산에 호감을 갖고 있던 국민들도 그렇지만 야구단 두산베어스의 상징인 곰의 듬직한 이미지에 매료돼 두산에 몸을 담은 직원들이 그들이다.
형제들의 전쟁터인 두산산업개발은 이미 쑥대밭이다.
쏟아지는 폭로에 신용평가회사들은 이날 두산산업개발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올렸다.
회사가 망가지는지,종업원들의 사기가 어떤지는 이미 안중에 없는 것 같다.
109년 국내 최고(最古) 기업의 말끔한 이미지는 어디로 갔는지,답답할 뿐이다.
김홍열 산업부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