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DJ)이 10일 오후 갑작스럽게 입원했다. 국정원이 최근 '국민의 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다'고 발표한 이후 현 정부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전·현 정부 간 관계악화 등 정국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DJ측 최경환 공보비서관은 이날 "김 전 대통령께서 며칠 전부터 기력이 떨어지고 미열이 있었다"면서 "염증 소견이 있어 이에 대한 검진이 필요하다는 주치의 장석일 박사의 권유로 오후 4시30분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3일로 예정됐던 김 전 대통령의 도쿄 납치 생환 32주년 기념미사도 취소됐다. 최 비서관은 DJ의 구체적인 입원 배경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함구했다. 다른 측근은 "김 전 대통령이 도청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락하는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마음의 병이 몸으로 옮겨진 것 같다"고 말했다. DJ의 입원 소식이 알려지자 여권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문희상 의장과 정세균 원내대표,배기선 사무총장 등이 연일 공개 석상에서 "불법 도청을 정권 차원에서 차단한 것은 국민의 정부"라며 DJ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려 안간힘을 써왔지만 사태가 더욱 꼬이고 있기 때문이다. 배 총장은 곧바로 문병을 했고,문 의장도 쾌유를 비는 난을 보냈다. 열린우리당이 이처럼 DJ 심기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이번 파동을 계기로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던 호남 민심이 한층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호남 민심 이반이 자칫 내년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여권 내에서 팽배했던 게 이를 뒷받침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입원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과거 국민의 정부 관계자들이 대거 문병을 올 것으로 보여 DJ의 진의와는 관계 없이 '병상 정치'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양준영·김인식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