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 변신] 경북대 교수 그만두고 레스토랑 차린 이원섭씨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0년 가까이 재직해 오던 국립대 교수직을 던지고 요리사가 되겠다고 하니 동료 교수와 가족들이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더 들면 정말하고 싶은 일을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을 벌였지요."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건너편 뒷길에 '바우만 스테이크 하우스'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원섭씨(55).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경북대학교에 정년이 보장되는 정교수(시각정보디자인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정년을 10년 이상 남겨두고 교수직을 그만두고 스테이크 하우스를 차린다고 하니 주위에서 펄쩍 뛰었다.
부인 이정혜씨(53)는 "오래 전부터 자기 식당을 너무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결국 올 것이 왔구나'하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실망과 반대가 워낙 커 일단 대학은 휴직하고 식당을 시작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이 교수는 대구에서 가장 특색 있는 레스토랑 사장으로 변신했다. 식당 경영에 확신을 얻은 그는 지난 2월 대학에 사표를 내고 명예퇴직했다.
부인과 대학 졸업반인 딸 지연씨(23)도 이제는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을 이해한다.
"딸은 교원 임용시험을 끝내고 나면 레스토랑 일을 도울 거라고 합니다"면서 활짝 웃던 이씨는 "부모님은 아들이 국립대 교수라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셨던 터라 아직 납득하지 못하신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30평 남짓한 뒷골목 식당인 바우만 하우스의 스테이크 맛이 일품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점심시간이면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손님의 발길이 잦아졌다. 이씨는 어머니를 닮아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교수의 길을 걸으면서 요리를 즐길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인생 항로를 바꾸게 된 것은 10년 전 심근경색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부터.
"20년씩 강단에 서서 매너리즘에 빠져 인생 후반기를 보내기보다는 위험이 따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죽을 때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님들이 스테이크를 맛있게 즐기는 것을 보면 정말 행복합니다."
그가 젊은 날의 취미 살리기에 집착해 무작정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5년에 걸친 연구와 준비작업을 거쳤다. 서울은 물론 미국과 유럽의 소문난 스테이크 전문점들까지 직접 찾아가 맛은 물론 식당 분위기까지 벤치마킹했다. 레스토랑 관련 서적도 수십권을 읽고 노하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바우만이란 이름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독일어에서 따왔다. 식당 경영으로 인생을 재설계하겠다는 자신의 염원(?)을 담은 상호다.
"스테이크 맛은 고기를 구워내는 과정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참숯의 불향이 살짝 배이도록 빨리 고기를 구워내야 합니다."
하루 동안 양념에 재워 둔 스테이크를 참숯불에 1차로 구워낸다. 다시 오븐에서 고객의 취향에 맞게 익힌 다음 마지막으로 참숯에 살짝 구워낸다. 전 과정이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맛깔스럽다.
달콤하면서 매콤한 소스는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춰 이 사장이 직접 개발한 것이다.
"재료비가 음식값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최고 품질의 원료만 엄선합니다." 그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상의 재료라고 강조한다. 재료 선택만은 자신이 직접 하고 있다.
젊은 시절 내내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해 시작한 일이었는 데도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따랐다.
오로지 '음식이 맛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레스토랑 자리를 구하면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소개한 첫 집과 곧바로 계약해 버렸다. 후에 알고 보니 임대료도 비슷한 입지의 다른 가게에 비해 많이 줬고 안줘도 되는 권리금까지 줬다는 사실을 알고 후회하기도 했다.
농산물 무자료 거래에 따른 세금 처리 문제,주차료,세탁비 등 식당을 준비할 때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경비들이 속출하는 바람에 경악하기도 했고 광우병 파동으로 식당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요즘은 한식에 대해 연구 중입니다." 그의 관심은 한국 전통음식을 현대의 실용적인 음식으로 재창조하는 것.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발달한 도식락 문화를 우리 음식에도 정립해 볼 계획입니다."
"미국 음식이 실용적이라면 유럽은 멋과 격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음식도 어떤 쪽으로 가닥을 잡느냐에 따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씨는 경북대 명예교수로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 강단에 서고 있다. 식당 일로 제대로 강의 준비를 할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동료 교수들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다.
그는 강단에서 제자들에게 늘 이 말을 한다. "인생이란 경외와 호기심의 대상이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자신있게 나서면 행복이 기다린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