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이터 실습생서 CEO 오른 호텔 리베라 박길수 사장 ] 박 대표의 일정은 지금도 변함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면 출근한다. 퇴근 시간은 밤 10시가 넘는다. 집보다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 그가 호텔에 입문한 것은 우연이었다. 익산 남성고를 졸업한 그는 대학입시에서 연거푸 낙방했다. 군 복무를 마친 1980년 또다시 대입을 준비하는데 친구가 "얼굴이 반반하니 호텔 보이로 일하면 굶어죽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그 말을 듣자마자 YMCA에서 운영하는 호텔학원에 등록했다. 6개월 연수 과정을 마친 뒤 그해 12월 웨스틴조선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웨이터로 입사했다. 호텔 일이 적성에 맞다는 걸 느낀 그는 업계에서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늘 저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직책의 상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살피고 공부했습니다. 웨이터 시절에는 캡틴(중간관리자) 일을,캡틴이 돼서는 지배인 일을 눈여겨 봤지요."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지배인 부장을 거치며 승진을 계속했다. 서울 힐튼호텔,신라호텔,라마다 르네상스호텔 등에 잇따라 스카우트됐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98년 특급호텔 임원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성사됐다가 막판에 물거품됐다. 고졸 학력이 걸림돌이 된 것.박 대표는 호텔 경력 20년째인 지난 99년 청운대 호텔관광경영학과에 입학했고,내친 김에 극동대 경영대학원에서 관광학 석사까지 취득했다. 지난 2001년 신안그룹이 인수한 호텔 리베라 총지배인으로 영입된 그는 2003년 마침내 대표이사가 됐다. "호텔은 학력이나 배경보다는 정직과 성실이 통하는 곳입니다.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스스로 하기 나름입니다." 그는 웨이터를 막 시작할 무렵 일어난 한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마다 살며시 미소를 짓곤 한다. 81년 당시 조선호텔 단골 중에는 작고한 백두진 전 국회의장이 있었다. 박 대표는 '거물 단골'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고 일부러 백 전 의장의 팔에 맥주를 엎질렀다. 당황하는 백 전 의장에게 그는 계속 큰 절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백 전 의장과 친해져 백 전 의장은 박 대표가 호텔을 옮길 때마다 따라다녔다. 백 전 의장은 호텔에 올 때마다 박 대표에게 단골 손님을 소개해 주곤 했단다. 그가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호텔 리베라의 모습이 확 달라지고 있다. 우선 고객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객실 손님과 영업장 매출도 늘어나는 등 경영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올해 말 객실 150개 규모의 신관도 개관한다. 내년에는 특1급 호텔로 승격을 신청하고 호텔 이름도 바꿀 계획이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 다시 웨이터로 돌아가 고객의 시중을 들 것입니다." 박 대표는 "호텔은 나의 인생이자 삶 자체"라며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수의 대신 웨이터용 턱시도를 입혀달라고 유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