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프랜차이즈점포를 운영하다가 7500여만원의 빚을 진 최모씨(45)는 지난 4월 개인회생이란 ‘탈출구’를 찾기위해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갔다가 자칭 '법원 출신 전문가'라는 30대 남자를 만났다. 최씨는 "70만원이면 서류 작성은 물론 접수까지 해결된다"는 말에 솔깃,임시사무실이 차려진 한 모텔에서 상담을 받았다."5000여만원까지 탕감받을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믿고 다음날 70만원을 온라인으로 입금했다.그뒤 아무런 소식이 없어 지난달 알아보니 법원 관계자는 "접수된 적 없다"고 대답했다. 최씨는 "대법원 규칙,채권추심 금지신청 등 전문용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던데다 접수증까지 줘 사기당할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채무자 신용회복 지원책에 따라 지난해 9월 도입된 개인회생제도가 지난 6월 신청건수 4135건을 기록하는 등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초생계비를 제외한 돈으로 5년간 빚을 갚으면 나머지 채무를 전액 탕감해주는 데다 개인파산과 달리 신분이나 직업에 불이익도 없어 인기가 높다. 그렇지만 변호사나 법무사에게 서류 작성과 접수 등을 맡기려면 100만∼300여만원이 든다. 이에 따라 선임료를 아끼려는 채무자를 노려 불법 브로커와 사기범들이 법원 주변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주식 투자 실패 등으로 1억5000여만원의 빚을 진 주부 박모씨(38·서울 노원구 월계동)는 지금도 빨간 승합차만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교대역 식당가 주변에서 개인회생 신청을 싼 값에 해주겠다는 브로커와 빨간색 승합차에서 상담을 벌였다. "서류 꾸미는 데 이골이 났다"는 말에 속아 30만원을 주었지만 법원은 오히려 '서류 미비'를 이유로 퇴짜를 놓았다. 이런 경우가 많다 보니 서울지역 개인회생 신청을 접수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과는 출입구 앞에 "법무사를 자칭하며 접근해 사건을 유치하는 불법 사례가 발견되고 있으니 불의의 손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안내문(사진)을 붙일 정도다. 자격증(행정사)을 빌려 버젓이 사무실을 차린 경우도 있다. 지난 6월 부산에서는 무등록 변호사 사무실을 차려놓고 채무를 100% 탕감해 준다고 속여 1129명으로부터 5억2000여만원을 받아챙긴 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최근엔 온라인에서도 무료상담을 권유하는 스팸메일과 문자메시지가 난무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와 채무액 등을 자세하게 기입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정작 운영업자들은 정체를 감추고 있어 개인정보를 침해하거나 제3자에게 내다 팔 가능성이 높다. 한 방송국 PD는 "아버지 치료비로 진 빚 문제로 얼마 전 인터넷 상담을 했는데 며칠 뒤 엉뚱한 업체로부터 내 채무액수를 정확히 표시한 채 상담을 권유 하는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와 소름이 끼쳤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스팸메일에 개인회생 전문 대부업자(신청비용 대출),브로커 등이 연계돼 신용정보만을 노렸을 경우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 개인회생 전문 변호사는 "개인회생은 서류작업이 대부분인 데다 피해를 입어도 신고를 꺼리는 채무자들이 많아 사기꾼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며 "가급적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고 충고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