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의 이별 끝에 이뤄진 2시간의 상봉은 너무나 아쉬웠다. 모니터를 더듬으며 노모의 얼굴을 쓰다듬는,일흔에 가까운 딸의 모습과 화면 너머의 아버지를 향해 큰 절을 올리는 아들의 모습으로 상봉장은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이미 90세를 넘긴 노모는 감각마저 쇠해져 북녘 땅의 딸들을 보고도 말문을 제대로 열지 못한 채 눈빛과 눈물로 평생 가슴 속에 묻어뒀던 말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광복 60돌을 맞아 15일 처음으로 실시된 남북 이산가족 화상 상봉으로 서울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본사 등 전국 6곳의 11개 상봉장과 북측의 평양 상봉장은 남과 북을 이은 광케이블을 타고 들어온 모니터 속의 혈육을 접하고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날 남측에서는 상봉자 20명과 그 동반가족 57명이 재북 가족 50명을,북측에서는 상봉자 20명이 남측 가족 79명을 각각 상봉했다. ○…이날 오전 8시 서울서 상봉을 시작한 남측의 김매녀 할머니(98)는 작년에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으로 입원한 상태에서 구급차를 탄 채 상봉장을 찾았다. 김 할머니는 휠체어에 의존해 가까스로 상봉장에 들어섰으나 북측의 딸을 보고서도 전혀 알아보지 못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가족들은 생전에 마지막일지도 모를 딸과의 만남을 성사시켜 보려고 김 할머니의 얼굴을 가볍게 치며 화면을 향해 "딸이에요. 딸"이라고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아무 말도 못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오전 8시20분 서울 상봉장을 찾아 이산가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누구를 만나느냐" "어디서 헤어졌느냐"고 사연을 물어보기도 했다. 정 장관은 " 연중 화상 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화상 상봉은 오후에도 이어져 최고령자인 남측 이 령 할머니(100)가 북측의 손자 내외와 상봉하고 인천상봉장에서는 강근형 할아버지(93)가 반세기 넘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북측의 부인 김현숙씨(77)씨와 화상으로 만났다. 특히 강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사흘 뒤에 돌아오겠다'며 부인 김씨와 헤어진 뒤 영영 돌아가지 못했고, 북측의 김씨는 슬하의 자식들을 키우며 수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