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잘 들으세요. 아버지 제삿날은 1955년 4월5일,어머니는 99년 11월30일입니다. 어머니가 생전에 형님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셨는데…." 15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이산가족 상봉 현장. 55년 만에 북측에 있는 형을 만난 정인걸씨(63)는 터져 나오는 울음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부모님의 기일만은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 보청기를 끼고도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형 병연씨(73)는 동생이 부모님의 영정을 꺼내 보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면을 향해 큰 절을 했다. 반세기의 이별 끝에 이뤄진 2시간의 상봉은 너무나 짧았다. 얼굴을 부빌 수도,손을 맞잡을 수도 없는 차가운 대형 PDP 화면을 앞에 두고 55년의 시간을 뛰어넘어야 했지만 꿈에 그리던 핏줄을 만난 가족들은 이내 화면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날 남측에서는 상봉자 20명과 그 동반가족 57명이 재북 가족 50명을,북측에서는 상봉자 20명이 남측 가족 79명을 각각 상봉했다. 화상상봉 가족 중 최고령자인 남측 이령 할머니(100)는 살아 있는 줄 알았던 큰 아들의 사망 소식을 상봉장에서 듣게 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 할머니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도 기력이 쇠해 계속 무표정하게 앉아 있어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인천 상봉장에서는 강근형옹(93)이 반세기 넘게 헤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북측의 부인 김현숙씨(77)와 화상으로 만났다. 강옹은 1·4 후퇴 때 '사흘 뒤에 돌아오겠다'며 부인 김씨와 헤어진 뒤 영영 돌아가지 못했고,북측의 김씨는 자식들을 키우며 수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