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김인숙씨(42)가 5년 만에 신작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창비)을 펴냈다.


지난 1983년 등단한 이후 줄곧 시대적 고민과 내면적 성찰이 결합된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사랑과 꿈이 사라진 삶 속에서 좌절하는 개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책에는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여성소설가를 주인공으로 한 표제작 '그 여자의 자서전'을 비롯 실연의 상처로부터 기억과 정체성의 의미를 묻는 '밤의 고속도로',전신불수가 된 남편과 육체를 넘어선 합일을 꿈꾸는 '모텔 알프스' 등 모두 8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 중 '바다와 나비'(200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와 '감옥의 뜰'은 작가의 중국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슬픔과 환멸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발견하는 인물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냈다.


표제작은 어느 졸부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된 여성작가 '나'의 이야기다.


거금의 원고료를 주겠다는 제안에 술술 써내려져 가던 자서전은 졸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라는 대목에서 막힌다.


수치스러운 현실에 우울해 할 즈음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는 오빠의 전화가 걸려온다.


선량하고 고지식한 탓에 자주 곤란을 겪는 오빠를 연민하며 나는 작가를 꿈꾸던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꿈을 떠올린다.


'숨은 샘'의 '나'는 17년 만에 우연히 한 대학친구를 만난다.


가난했던 그는 대학시절 데모 한번 못하고 공부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학생.이 때문에 그는 친구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했지만 인생의 '해피엔딩'을 꿈꾸는 순진한 청년이었다.


한동안 잊혀졌던 그는 어느날 공기업 파업현장을 담은 뉴스화면에 등장한다.


얼마 후 해고를 당한 그는 보험외판원이 되어 다시 나타나 친구들 입에 오르내린다.


나는 기억 속에 순수했던 그가 아직 훼손되지 않았으며 그의 '해피엔딩'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