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는 국가정보원이 휴대폰을 도청했다고 고백한 지 11일 만인 16일 가능성을 시인했다. 국정감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 기존 입장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이동통신망 장비에 몇가지 소프트웨어만 깔면 엿들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통부에 따르면 전국 200여개 이동교환기에서 감청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교환기는 기지국의 무선 신호를 유선 신호로 바꿔주는 이동관문교환기 바로 앞에 설치돼 있는 장비다. 정통부는 바로 이곳에 감청 소프트웨어를 깔고 시스템을 변경하면 어떤 휴대폰이든 마음만 먹으면 엿들을 수 있다고 밝혔다. 진대제 장관은 "이동교환기에 감청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을 설치하면 특정 번호의 통화를 걸러낼 수 있다"고 밝혔다. 정통부는 그동안 교환기에 소프트웨어를 깔고 시스템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감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은 채 "현실적으로는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감청 장비가 크고 무거운 데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옳다는 점만 강조했다. 이동통신망을 구축할 때 국가정보원이 비밀리에 이 같은 소프트웨어를 깔아놓았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통부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깔아놓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부인했었다. 한 관계자는 "유선 전화에는 감청 코드가 깔려 있어 합법적인 감청이 가능하다"면서 "이동통신망에도 감청 시스템을 설치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통부는 유선 통신망의 경우 예전부터 감청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동통신이 특정 유선전화와 연결될 때 지역 유선교환기나 공항·항만 관문교환기 등에 감청 장비를 연결해 엿들을 수 있다는 것.휴대폰 통화도 유선 통신망을 거치는 동안 감청에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정통부는 이동전화 엿듣기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큰 점을 감안,몇가지 대책을 내놨다. 우선 개인별 통화를 암호화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음성암호화 부호를 도입키로 했다. 현재의 개인별 부호는 전자적 고유번호(ESN)를 알면 제한적이나마 엿듣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복제가 불가능한 암호 키를 이동전화 단말기에 내장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불법복제 단말기가 감청에 악용될 수도 있는 점을 감안,착·발신 단말기의 고유번호를 이통사가 확인하는 인증제도 마련키로 했다. 고기완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