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는 "일에 있어 남성만의 영역은 없다"고 주장하는 맹렬 여직원들이 많다. 김영기 조선 중조립부 용접사와 선박해양연구소 이인혜 연구원도 그들 중 일부.탁월한 실력에다 꼼꼼함,그리고 성실함으로 무장하고 현장을 뛰거나 연구에 몰두하는 그들은 프로 중의 프로로 평가받고 있다. 김영기 용접사(49)는 중조립부 소조팀의 유일한 여성 용접사다. 옛 현대그룹 시절 그룹 인재교육원에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다가 1998년 기술교육원에서 3개월간의 용접교육을 받고 용접사로서 새출발했다. 당시 지병을 앓던 남편을 여의고 세아이를 부양해야 했던 눈물겨운 사연이 그로 하여금 용접사의 길을 걷게 했다. 용접기를 본 적도 없던 그에게 용접사의 길은 힘겨웠다. 특히 여성 용접사에 대한 편견과 체력적인 한계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홀로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배웠다"는 그는 "절대 울지 말자고 숱한 다짐을 했지만 화장실에 숨어서,일하면서 남 몰래 많이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제는 중조립부 내에서 누구나 인정해주는 실력파다. 꼼꼼하고 빈틈 없는 작업 덕분에 선주 감독관들도 언제나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이 회사 선박해양연구소 해양유체연구실에 근무하는 이인혜 연구원은 같은 연구실에 근무하는 150명의 연구원 중 홍일점이다. 유일한 여자 말동무라고는 행정을 담당하는 여직원 한명 뿐이다. 선박과 해양구조물의 운동과 계류에 대해 해석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현대중공업 뿐 아니라 조선업계를 통틀어 이 분야에 근무하는 여성은 이씨가 유일하다. 이런 점이 이씨가 자신을 끊임 없이 채찍질하는 에너지원이 됐다. 5년 전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배 위에 올라가면 남자 직원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귓속말을 했다.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입사하는 여사원이 거의 전무했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던 편견어린 눈빛은 "거친 일이지만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그의 의지와 성실성으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씨는 "5년이 지난 지금 신입사원 때와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고 말한다. "오히려 저한테는 설명도 잘 해주고 도움을 많이 주세요. 제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여사원은 일년에 한 명 들어올까말까 했는데 요즘에는 7∼8명씩 들어오고….여성 인력에 대한 회사의 가치관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회사 관계자는 "김영기 용접사나 이인혜 연구원처럼 남자들의 영역에서 열정을 불사르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전문성을 가진 여성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회사 경쟁력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