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준 < 한불상공회의소 회장 infos@fkcci.com > 광복 60주년을 맞아 우리는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선상(線上)에서 출발해 한국보다 더 빨리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속도야말로 한국의 경제 기적를 가능케 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였으며 여전히 국가경쟁력의 핵심 요소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국 화장품회사가 제품 계획 수립에서 판매에까지 걸리는 시간은 통상 9~10개월로 알려져 있다. 반면 외국 회사들은 똑같은 과정에 약 2년이 걸린다고 한다. 기업 경영에서 보여준 속도가 우리 일상생활 속에도 스며든 것일까. 정보기술(IT) 산업의 급신장과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는 한국인의 비율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게 이를 잘 반영한다. 어떤 경우에는 한국인이 식당에서 음식 주문 후 먹고 계산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외국인의 주문 시간보다 짧을 때도 있다. 그러나 속도와 조급함은 구별해야 한다. 흥분하거나 조바심한다고 해서 일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100m 달리기와 마라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고 가정하면 100m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10초 안에 승부를 보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마라톤 주자가 빠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차이라면 마라톤의 거리가 더 길다는 것과 주자의 코스 공략 방법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우승을 향한 주자들의 목표는 똑같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는 어떤가. 외국인을 만났을 때 이따금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바로 '빨리빨리' 문화다. 한국인들은 외국인의 느려 보이는 속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같은 이유로 한국인들은 참을성이 없다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게 아니냐고 여기는 외국인들도 있다. 빨리 해야 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의,공손,근면 같은 전통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셈이다. 경제적으로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사회에서는 단순히 속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차별화한 단계에 진입하기 위한 타이밍을 잡는 게 더 중요해졌다. 소비재의 라이프 사이클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속도뿐만 아니라 혁신의 기법이 요구되고 있다. 혁신 성공의 열쇠는 경쟁자보다 빨라야 할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찾아내 다른 누구보다 그 아이디어를 제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