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말리는 토종 영어狂 알프마이어 김은숙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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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저보고 잉글리시 페이션트(English Patient)래요."
독일계 자동차부품 회사인 알프마이어코리아의 김은숙 대리.그녀는 소문난 '영어광'이다.
책상 모서리에 부딪치면 '아야'가 아닌 '아우치(Ouch)'가 튀어나온다.
잠꼬대까지 영어로 한단다.
남편이 영화 제목 '잉글리시 페이션트(영국인 환자)'를 '영어 환자'로 해석해 김 대리를 놀릴 정도다.
영어에 빠져 살다 보니 실력도 탁월하다.
강용규 알프마이어 부사장은 "김 대리가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을 들으면 어느 쪽이 외국인인지 헷갈린다"며 "어지간한 영어는 전공자들보다 훨씬 수준 높은 영어를 쓴다"고 극찬했다.
이런 김씨의 영어가 자수성가형(?)이라는 데 주위 사람들은 놀란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 흔한 해외 연수 한 번 가본 적 없고 전공도 법학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전북 장수군 군수 비서실,변호사 사무실 등 영어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을 했다.
그랬던 그녀가 어떤 계기로 27살 나이에 '늦깎기(?) 영어광'이 되었고 토종으로서 그렇게 힘들다는 영어도사가 될 수 있었을까.
"필리핀 배낭여행을 할 때였어요.
우연히 영어 쓰는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영어가 너무 짧은 탓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정말 속이 상했죠.자존심도 상했고요."
흔히 해외 여행을 가면 김씨와 같은 경험을 하지만 대부분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영어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면서 영어공부 작심도 작심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그녀는 달랐다.
귀국하자마자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했다.
토익 학원을 다녀볼까 하다 높은 점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만 보면 입이 굳어버리는 남편의 실패(?)를 답습하기 않기 위해 자신만의 전략을 짰다.
"원어민 영어교사들과 친해지는 게 지름길이라 싶었는데 적중했습니다."
그녀는 원어민 교사들이 한국생활에서 겪는 생활 불편을 덜어주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갔다.
"세탁기 설치 같은 자질구레한 일들부터 도와줬어요.
나중엔 외국인 교사들이 부부동반으로 외출할 때 아이를 맡기러 올 정도로 친해졌어요.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 친해지니 의사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더라고요."
김 대리는 학원을 다니는 틈틈이 야후 등 해외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음성 채팅방을 찾았다.
"영어회화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돈을 안 들이고 그들의 생각도 엿볼수 있고요---영어채팅이야말로 인터넷과 세계화시대 정보교류의 총아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도사가 되기까지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은근과 끈기로 밀고나갔다.
"채팅방에서 강제 퇴장당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저를 퇴장시킨 방에 또 들어가 '영어 배우러 온 거니 이해해 달라.한국말이 배우고 싶으면 한국말을 가르쳐 주겠다'고 맞섰습니다.
음성 채팅으로 사귄 사람들 중 아직도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년간의 학원 수업과 채팅 훈련으로 영어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은 김 대리는 자신의 영어가 해외에서도 통할지 궁금해졌다.
김 대리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단기 해외 취업'이라는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남편이 준 300만원으로 비행기표 끊고,옷 몇 벌 사고 나니 호주에 갈 때는 100만원밖에 안 남았어요.
이 돈으로 6개월을 버티겠다고 단단히 결심했어요.
호주에서 햄버거 가게 일,아이 봐주기,레스토랑 서빙 등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처음엔 한국에서 익힌 영어와 현지 영어가 달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6개월이 지나면서 '내 영어가 나쁘지는 않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호주에서 돌아온 김 대리는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알프마이어에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알프마이어는 그녀의 영어구사 능력과 적극성을 높게 평가한 나머지 기존 경력을 모두 인정,대리 직급을 주었다.
"업무의 90% 이상이 영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어요.
한 단어라도 놓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만족스럽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알프마이어 한국지사장이 되겠습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