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수 감독의 '초승달과 밤배'는 영화가 '꿈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현실의 거울'임을 보여준다.


고(故) 정채봉씨의 원작 동화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동화라기보다는 사실적인 이야기다.주인공 어린 남매의 삶에는 희망 보다 절망이 많다.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그것도 꿈의 성취가 아니라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에 그친다.


그러나 각박한 시대에서 보기 힘든 순수한 가족애가 전편에 흐른다.


지난 90년대 '은마는 오지 않는다''아버지''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에서 미국문화의 침탈과 전통문화의 붕괴를 탐구했던 장 감독은 신작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성을 환기시켜 준다.


영화는 가난한 할머니(강부자)와 함께 사는 어린 남매 옥이와 난나의 삶을 들여다본다.


난나는 곱사병에 걸린 여동생 옥이가 밉기만 하다.


옥이를 돌보느라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동네아이들은 옥이에게 '병신'이라며 놀리기 때문이다.


곱사병에 걸린 옥이는 '말아톤'의 자폐아처럼 최근 우리 영화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도록 이끄는 주인공이다.


옥이는 조금도 혐오스럽지 않을 뿐더러 정상인보다 훨씬 고운 마음씨를 지녔다.


옥이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순수를 상징한다.


그것은 보통사람의 한명인 난나의 시선처럼 당초에는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난나의 삶에서 희망이 된다.


이 작품에서 가족애는 즐거운 체험을 공유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별의 순간에 느끼는 슬픔으로 형상화돼 있다.


가족과 헤어질 때마다 흘리는 옥이의 눈물은 난나의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는 샘물이다.


어린 남매가 꿈꾸는 어머니 이미지는 선생님(장서희)과 빵집 여주인(양미경)이다.


그들은 우아하고 친절하지만 함께 살 수 없는 인물들다.


진정한 어머니는 남매를 거둬 키우는 할머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할머니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촌로이지만 남매를 위해 몸을 바치는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각박한 일상에서 고마운 사람을 잊고 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할 수 있다.


25일 개봉, 전체.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