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엔화 부동산으로 ‥ 은행들 편법대출 '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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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병원을 경영하는 김 원장(53)은 지난 5월 한 은행에서 연 2%대의 금리로 20억원(약 2억엔)의 엔화대출을 받았다.
서류상 대출용도는 의료장비 수입.그러나 실제로 이 돈은 의료장비를 들여오는 대신 원장 개인 명의로 땅을 사는 데 들어갔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이처럼 엔화대출을 투기자금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성행,엔화대출에 대한 사후 감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규정상 엔화대출은 사업자등록증이 있으면서 엔화로 수출입을 하는 실수요자의 시설 및 운영자금으로 용처가 제한돼 있다.
하지만 실제론 의사 등 신용도가 높은 개인 사업자들이 엔화대출을 받아 이를 부동산 투자에 쓰는 사례가 많다는 게 금융계 및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일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은행의 엔화대출 담당자와 연계해 자신의 고객들에게 전문적으로 엔화대출을 알선해 주는 경우도 있다.
한 중개업자는 "부동산 투자를 위해 적게는 3억원에서 많게는 80억원까지 엔화자금을 빌리는 개인 사업자들을 봤다"고 들려줬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자금이 부동산 투자에 쓰일 것을 알고도 편법대출을 '묵인'한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한 은행의 PB는 "개인사업자들이 받는 엔화대출은 절반 이상이 부동산 투자용이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털어놨다.
엔화대출의 투기 자금화를 부추기는 것은 은행뿐이 아니다.
최근엔 일부 대금업체들이 연 2%의 '의사담보 엔화대출'이라는 상품을 내놓고 의사면허증과 사업자등록증 사본만 있으면 용도 제한 없이 대출이 가능하다며 대출 세일즈를 벌이고 있다.
이 같은 투기목적의 엔화대출은 최근의 원·엔 환율 하락으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는 지적이다.
1년 전에 100엔당 1040원대 환율에서 대출을 받은 사업자들은 현재 환율(927원) 기준으로 대출원금이 10% 이상 줄어드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엔화가치가 원화에 비해 하락하면서 원화로 환산한 대출원금이 그만큼 감소한 것이다.
이와 관련,금융계 관계자는 "엔화대출에 대해서는 사전적으로만 용도를 규제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금융당국은 엔화대출이 투기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사후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