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인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광주일고’ 출신들이다. 단일 고등학교 출신으론 타 학교에 비해 숫적으로 유난히 많은데다 자타가 공인하는 내로라하는 쟁쟁한 실력가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광주일고 인맥 가운데 ‘스타’급으로는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 송상종 피데스투자자문 사장 등이 꼽힌다.


'일고 출신 3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1977년(52회) 졸업 동기생으로 지난 20여년간 경쟁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증권·자산운용 업계의 대표 스타로 성장해왔다.


세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경쟁 대상이었다. 공부에선 송 사장이 조금 앞섰다. 졸업 후 송 사장은 서울대 무역학과에,장 사장은 서울대 사회학과에,박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송 사장은 은행원으로,장 사장은 삼성그룹으로,박 회장은 증권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87~88년 약속이나 한 듯 차례대로 동원증권으로 모였다.


동원증권 시절 '3인방'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들이 상품팀에 근무할 때는 증권업계 최고 상품을 제조해 히트시켰고,영업부문에서 일할 때는 각종 기록을 모두 휩쓸다시피 했다. 당시 박 회장과 장 사장이 각각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과 합정동지점장을 지낼 때 두 지점은 약정에서 전 증권사 지점을 통틀어 전국 1,2위를 다툴 정도였다. 이들의 경쟁관계는 97년 각자의 길을 선택,업계 최고경영자(CEO)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줄곧 이어졌다.


증권업계에서 광주일고 출신 인맥은 폭이 넓다. 현직 증권 및 자산운용사 사장,유관 기관 주요 인사로는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지낸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41회),김대송 대신증권 사장(42회),강상백 금감원 부원장보(44회),곽성신 증권선물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44회),김종관 한누리투자증권 사장(47회),이병헌 피데스증권 사장(52회) 등이 대표적이다.


주요 임원급으로는 안용수 칸서스자산운용 부사장(48회),정찬형 한국투자증권 전무(50회),박래신 한국투자증권 상무(50회),이재직 한국투자증권 상무(51회),이왕규 한누리투자증권 상무(52회),정만상 미래에셋증권 이사(52회),최경주 미래에셋증권 부사장(55회) 등이 광주일고 출신들이다. 현직을 떠났지만 증권업계 출신으로 첫 은행장을 지낸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40회·전 동원증권 사장),조승현 전 교보증권 사장(41회) 등도 모두 광주일고를 졸업했다.


광주 서중을 나온 후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서중·광주일고 동문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 회장(37회),이강원 전 굿모닝신한증권 사장(44회·현 한국투자공사 사장),홍석주 한국증권금융 사장(46회) 등이 있다.


이들 광주일고 출신 증권인은 업계 발전을 이끌며 서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은행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동문까지 포함,일금회(一金會)라는 친목단체를 만들어 분기별로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있다.


증권업계에 광주일고 출신이 유독 많은 것이 지역 소외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한 증권사 사장은 "과거 3~6공화국 시절 정권에서 소외받은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고등학교 출신으로는 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출세하기 힘들어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했던 제2금융권으로 대거 진출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광주일고 졸업생 상당수가 법대 대신 의대로 진학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운용사 사장은 "광주일고 출신들의 특징은 도전과 모험정신이 강하다는 것"이라며 "증권·자산운용 업계가 은행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역동적인 것이 일고 출신들의 특성과 맞아떨어진 점도 폭넓은 인맥을 형성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