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2일자) 국제행사마저 볼모 삼은 노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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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부산에서 열기로 한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ㆍ태평양지역 총회가 무산될지도 모를 상황에 처했다. 노동부는 예정대로 열겠다고 하지만 공동주체의 한 축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참여 거부를 선언한데 이어 개최지 변경까지 요구하고 나선 탓이다. 두 달도 채 안남은 국제행사가 다른 이유도 아닌 이런 집안 싸움 때문에 무산되기라도 한다면 나라 망신도 보통 망신이 아니다. 이번 총회는 43개국 대표 600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다.
양대 노총이 오로지 자기들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국가 이미지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도부는 지난 12일 아시아나 파업사태에 대한 정부의 긴급조정 발동에 항의한다며 공동 기자회견문을 발표했었다. 이 자리에서 ILO 아태총회 불참을 선언하고 아태지역 총회의 개최지를 변경해 줄 것을 정식으로 ILO에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개최지가 변경되지 않을 경우 아태지역 각국 노동계와의 연대 속에서 보이콧을 포함하여 대규모 장외투쟁과 대항 포럼을 조직화하여 대응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 그 때만 해도 설마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보고 우리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하는 자괴감까지 느껴진다.
아시아나항공 파업사태에 대해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고 나서자 양대 노총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나온 것을 보면 그동안 국제행사마저 볼모 삼아 정부를 위협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양대 노총이 내세우는 이런 저런 이유는 한마디로 전혀 설득력이 없다. 정부가 재계의 압력에 못이겨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고 하지만 아시아나 파업은 애당초 명분이 약한 파업이었다. 노동부 장관이 자기들 맘에 안들어서 그런다고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유치(幼稚)에 가까운 행동이다. 정부의 각종 노동정책이 노동탄압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렇다. 정말 그렇다면 국제행사를 보이콧할 게 아니라 이번 ILO 아태지역 총회에서 분명히 주장하고 토론하는 것이 떳떳한 자세다.
오로지 자기 요구만 내세우고 또 그것을 관철하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하루속히 사라져야 할 구태(舊態)다. 양대 노총은 국민들도 눈과 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