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 출판마케팅연구소장 > 여름방학이면 으레 초·중등 학생들을 위한 온갖 추천도서가 발표된다. 이렇게 추천되는 책들은 물론 모두 좋은 책이다. 지난 시절 책 읽는 문화를 만드는 데 이런 관행이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들만이라도 학교도서관이 갖추고 학생들이 가깝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추천도서가 좋은 역할만 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말이다. '서울대학교 권장도서'만 놓고 보자.나이 18세에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듯 하는 '학벌사회'에서 서울대 권장도서는 발표되는 순간 '권력'이 된다. 그 목록이 누구를 위해 작성됐는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출판사들은 그런 종류의 책 생산에 열을 올리고, 시장에서는 그런 책 위주로 진열하고, 언론에서는 그런 책을 소개하기에 바쁘고, 일선 고등학교나 입시 자녀를 둔 학부모는 그런 종류의 책을 사 모으기에 바쁘고, 학생은 의미도 제대로 깨우치지도 못한 채 무작정 그런 책을 읽기에 바쁘다. 하지만 어떤 목적을 위해 강요된 독서로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깨닫기 어렵다. 오히려 어린 시절 어른이나 읽는 '위험한' 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책에 빠져버려 결국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된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한 도서관 직원은 이런 책을 '독약본(毒藥本)'이라고 말했다. 읽는 사람에게 '독'이 될 수도 있는 책의 발견이 오히려 커다란 충격이 되고 그리하여 결국 꼬리를 무는 책읽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올초 정년퇴직하신 은사 한 분은 한평생 학교도서관 '운동'을 하셨다. 하지만 정작 그 분이 성과를 낸 것은 학교의 CEO인 교장이 되고나서였다. 그는 한 고등학교를 책 읽는 학교로 만드는 데 성공하셨다. 선생님은 여러 장소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게 됐다. 그 강의에서 선생님이 강조하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접근성'이다. 학교도서관은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투리 시간에 잠시 들러 잡지라도 읽을 수 있는 '쉼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책의 '신선도'다. 학교도서관에는 슈퍼마켓의 두부처럼 아주 신선한 신간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학교에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만화, 판타지, 로맨스소설, 신간 잡지 등을 고루 갖춰놓았다. 이런 경험담을 들으면서 나는 대중독자의 출현을 알린 '별들의 고향'(최인호)을 비롯한 이른바 호스티스 소설들을 고교시절 학교도서관에서 읽은 기억을 떠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고등학생에게 이런 소설들을 읽으라고 추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70년대 중반에는 가난한 고등학생이 이런 책을 사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꽤 읽었다. 선생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심한 배려가 결국 내가 책을 업으로 살아가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선생님은 학교도서관의 책이 신간으로 1만권이 넘어서자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책이 나오더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1만권이 넘으면 인간 독서능력의 개인차를 수용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모든 학교도서관이 하루빨리 그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사서오경 등 10권 안팎의 책만 읽고서도 지식인 행세를 하던 조선시대가 아니다. 학생들은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에 자유롭게 접근해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고 효과적으로 재배치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우리가 조선시대 마냥 추천된 몇 권의 책을 획일적으로 읽고 암기하고 그걸 평가해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는 것은 이땅에서 사라져야 할 어리석은 발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