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하루 앞둔 24일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 오찬을 함께 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임기 전반기를 자평한 뒤 국가사회적 위기요인을 진단하면서 지역구도 타파 등 정치선진화를 위한 결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오 시작된 오찬은 예상과 달리 노 대통령의 발언이 길어지면서 1시간45분동안 진행됐다. = "고이즈미.슈뢰더, 참 부럽다" = 0...노 대통령은 중장기적 위기요인 극복을 위한 미래전략을 말하면서 최근 조기 총선 실시의 승부수를 던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부러움을 표시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자민당 내부 반란표로 부결되자 하원격인 중의원을 해산했고, 슈뢰더 총리는 사회복지 축소 등 개혁정책이 기존 좌파 지지자들의 반발로 발목이 잡히자 의회를 해산하고 재신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필요한 개혁이 기득권 구조 때문에 지체돼 이런 사태가 온 것"이라며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도자들이라고 한다면 개혁에 당장 손해보기 때문에 저항하는 쪽이 국민들, 지지자들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슈뢰더 총리의 재신임 요구에 대해 "이 일을 할 수 없으면 앉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정치를 마감하려는 것이고, 또한 정권을 바꿔서라도 이 개혁은 해야되겠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강력하게 던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추론한다"며 참모진에게 관련자료 수집을 지시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보면 참 부럽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은 뭐냐? 당을 걸고 승부를 할 수도 없고, 자리를 걸고 함부로 승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제도화돼 있지 않고,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사표만 낸다고 이(지역구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고이즈미, 슈뢰더 총리는 평생의 정치신념 실천과 국가위기 극복을 위해 정치생명을 거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노 대통령 자신은 그런 것조차도 제도적으로 할 수 없다는 하소연인 셈이다. 즉 대연정 등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것은 정치적 노림수니 무슨 음모에서가 아니라 현 제도와 정치환경에서 내린 선택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은 "그래서 계속해서 같은 말(대연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연정 제안에 담긴 진정성을 강조한 뒤 "연정이 아니라도 좋고, 여야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이 위기상황을 부닥쳐 나가는데 성의를 갖고 해보자"고 말했다. = "언론에 미안한 마음 항상 있다" = 0...노 대통령은 임기 전반기 언론관계에 대해 "냉랭하고도 불편한 관계가 상당히 진행됐던 것도 사실"이라며 미안함을 표시하면서도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겨왔다"고 자평했다. 특히 언론에 대해선 관계 재정립 과정을 거치면서 과거 누리던 약간의 사회적 특혜가 사라졌지만 자부심이 강한 직업인으로 보는 사회적 평가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노 대통령의 진단이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언론과의 관계에서 욕심을 좀더 부려보고 싶다"며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조화처럼 조율되고 협력해 가는 관계, 창조적 대안을 제시하는 경쟁관계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참여정부 평가, 크게 보자" = 0...노 대통령은 임기 전반기에 대한 각계각층의 평가와 관련, "많은 사람이 많은 잣대와 기준을 갖고 평가한다"고 지적한 뒤 "크게 보자"며 거시적 관점을 강조했다. 먼저 전체적인 총론적 평가의 경우 참여정부가 시대의 흐름과 과제에 순행하고 충실했는지가 평가대상이 돼야하며, 각론적 평가 또한 과거의 선입견과 이미지를 버리고 증명된 실적과 지표를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부채 증대에 따른 경제위기론 등 실체 없는 논란은 접고 생산적이고 실증적인 토론문화를 만들어보자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위기를 극복했다고 하면 국민들이 조금 섭섭해 할지 모르기 때문에 한 고비는 넘겼다는 수준으로 표현하고 싶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끈 것"이라며 "위기의 문제는 넘어갔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정치가 발목을 잡는다"= 0...노 대통령은 후반기에 역점을 둘 과제와 관련, "정치가 한국의 발목을 잡는다"는 표현을 써가며 정치구조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정부혁신은 본궤도에 들어섰다"고 전제, "이제 남은 것은 정치"라며 "저와 집권정당, 여야 모두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도전해봐야 될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결단을 촉구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비효율적이고 비능률적인 구조, 비생산적인 우리의 문화를 전면적으로 맞부닥쳐서 고쳐보자"며 "87년 6월 항쟁이라는 거대한 투쟁을 통해 역사의 한 고비를 이뤘다면 지금 우리는 정치권이 새로운 결단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한번 만들자"고 말했다. 나아가 "대홍수가 지나가면 강물길이 바뀐다. 자연현상에서도 대변동이 있듯이 우리 국민들이 결단하고 새로운 변동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그런 것이 지금 이 시기에 우리와 함께 가야될 과제 아니냐"고 반문하며 정치구조 개혁을 후반기 최대 역점과제로 삼을 뜻임을 분명히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