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 여자골프의 성공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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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골프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박세리 박지은이 주춤하면서 골프여제라고 칭송 받는 소렌스탐의 독주를 예고했던 세계여자프로골프계는 새로운 한국선수들의 거듭된 우승에 경악해 하고 있다. 1998년 박세리가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불사르며 연장 끝에 극적인 우승을 할 때만 하더라도,사람들은 그 쾌거를 한 사람의 천재성으로 돌렸다.
그러나 박세리에 뒤이어 김미현 한희원 박희정 등 미국무대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의 우승이 잇따르자 세계언론은 한국여자골프가 왜 세계무대에서 강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김주연 장정 강수연이 금년 주요대회를 석권하고,언제든지 우승권에 있는 한국선수들이 10여명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여자골프의 경쟁력은 세계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미국과 유럽 간 여자프로골프국가대항전인 솔하임컵을 한국과 비한국권 간의 대항전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미국기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나올 정도니 말이다.
과연 이런 세계최고 경쟁력의 비결은 무엇인지,그리고 어떤 시사점을 배울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서구언론이 일찌감치 내린 한국여자골프의 경쟁력 비결의 결론은 한국 부모의 극성이다.
그러나 극성론만으로는 왜 똑 같이 한국남자 골프는 왜 한국여자들만큼 세계무대에서 성공적이지 못하는가 하는 반론에 부딪힌다.
한국여자 골프의 경쟁력의 첫 번째 비결은 한국부모들이 제대로 투자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스포츠에서의 승부는 체력,훈련,전술,정신력에 의해 좌우된다.
전통적으로 육상 장거리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에티오피아,케냐 선수들의 경쟁력은 고산지대 출신이라는 체력적 특성에,한때 여자체조를 휩쓸었던 동구권의 성공비결은 체격과 지독한 훈련에 있다.
동구권에서 귀화한 코치들과 미국부모들의 극성은 미국여자체조를 세계강국 열반에 올려놓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력을 제약조건으로 놓고, 한국부모와 딸들은 그들의 경쟁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경기분야를 선택한 것이다.
두 번째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이다.
자신의 경기력을 높이고 언론과 광고에서의 상품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려고 하고, 다른 선수들과 어울리려는 한국선수들의 노력은 대단하다.
이 때문에 골프의 우승을 좌우하는 기싸움에서 한국선수들은 밀리지 않는다.
일본프로골프의 전설 점보 오자키는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할 때면,자신의 전속요리사를 대동하고 시합장 주위의 집을 구해서 시합 당일 집에서 옷, 신발 다 입고 그대로 시합장으로 가 시합만 했다고 한다.
클럽하우스에서 또 연습장에서 다른 선수들과의 기싸움을 애써 외면하는 이런 방식은 왜 그가 미국프로대회 때마다 우승후보로 점쳐졌으나 별 신통한 성적을 올리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한국인 특유의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빼고는 한국여자골프의 세계적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박세리가 높게만 보이던 미국프로무대의 벽을 무너뜨린 다음, 한국에서 그와 우승을 다퉜던 많은 선수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을 불태우게 만들었다.
20세기 후반 한국의 비약적인 압축경제성장신화를 쓰게 만든 불굴의 도전 정신을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부정적 사회심리가 '사돈이 논을 사니까 나도 살 수 있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승화된 것이라 설명하는 사람도 있는데,한국여자골프도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한국사회에 만연하는 것으로 지탄 받는 결과평등주의,또 가난하더라도 깨끗하게 살면 된다면서 부유함보다 오히려 가난함을 자랑하던 냉소주의적 문화도 한 꺼풀만 뒤집어 놓으면 그 속에는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