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매각을 기다리고 있는 대형 구조조정기업들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20조원이 넘는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시가총액은 10조원에 육박하고 있고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은 각각 3조∼4조원을 오르내린다. 이들 기업의 지분 50%를 처분한다고 단순 가정할 경우 10조원이 넘는 돈들이 오고 간다는 얘기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들 구조조정기업을 인수하려는 기업들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출자총액규제 등으로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등 4대 그룹의 인수전 참여가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 중국계를 비롯한 해외 거대자본에 대적할 만한 기업이나 펀드는 거의 없다. GS나 LS 같은 신흥 그룹이나 한진 금호와 같은 중견 기업들이 인수전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지만 단독으로 조(兆)단위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군인공제회나 PEF(사모투자펀드) 같은 곳이 대안으로 거론되고는 있지만 이들 펀드의 규모 역시 해외 펀드들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따라서 국내 기업 및 금융사들과 중국계가 정면으로 맞닥뜨릴 경우 인수전의 승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 채권단의 판단이다. 하지만 채권단 입장에선 중국계에 팔기 싫다고 해서 매각이나 입찰 일정 등을 한사코 미룰 수만은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매각 과정에서 중국계의 참여를 의도적이고 노골적으로 배제했다간 자칫 중국 정부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자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한 상태이기 때문에 통상 분야의 보복수단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구조조정기업 조기매각을 통한 국회와 정부의 공적 자금 회수 압력도 부담스럽다. 정상화가 완료된 기업의 경우 조기 매각을 통한 '주인 찾아주기'가 그동안의 '처리 공식'이었다. 여러 가지 속사정을 도외시한 채 무작정 매각하라는 압력이 들어오면 채권단도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구조조정 기업들의 지분을 분할해 국내외에 순차적으로 매각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지배주주 없이 미국에 일반화돼 있는 주식회사 형태를 도입,소유 분산과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 역시 국내에 유능한 전문경영인들의 저변이 넓지 않고 기업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수동적인 경영행태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결국 관건은 국내에 역량 있는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독과점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면 4대 그룹의 투자 족쇄를 풀어주는 것도 또하나의 대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