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이 IMF 당시 대우의 수출환어음을 할인해 주지 않은 것은 비협조적인 정부 탓이다."(김우중 회장) "정부가 금융기관에 대해 수출어음을 할인하도록 지침을 내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대검 중수부 검사) 지난 23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실. 200여 방청석이 꽉 찬 가운데 세기적 재판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방청객들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검찰과 김우중 전 대우 회장도 서로 최선을 다해 공격과 방어에 나섰다. 대검 중수부에선 이병석 검사가 나왔다. 이 검사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거물급들을 주로 상대해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특수통. 상대는 맨손으로 출발해 한때 그룹을 재계 서열 2위까지 끌어올린 '샐러리맨의 우상'이지만 숨돌릴 틈도 없이 코너로 몰아붙였다. 김 회장을 다그치는 눈에서 노기마저 느껴졌다. 심장병 등 지병 악화로 심신이 허약해진 탓일까. 김 회장의 체구는 이날따라 한층 왜소해 보였다. 그래도 간간이 반박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곤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검찰 관계자는 "김 회장이 이미 대부분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식회계 지시나 외화국외도피죄 등은 이미 결론이 나 있다는 것. 오는 31일께 검찰의 추가기소 및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요식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6월14일 해외잠적 5년8개월 만에 입국한 김 회장 수사는 두 달 보름여 만에 김 회장의 죄만 부각되는 결론으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은 의혹이 너무 많다. 특히 대우그룹 해체 과정과 이어진 김 회장의 돌연 출국은 영원히 미궁 속에 빠질 공산이 커졌다. 검찰은 당시 권력 핵심의 외압이나 일부 계열사 경영권 등 반대급부를 보장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실체가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려놓고 있다. 이 와중에 25일 또 다른 의혹이 불거졌다. 김 회장이 99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인 조풍언씨를 통해 100억원대의 구명로비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상 유사한 의혹은 끝없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김병일 사회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