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페셜 럭셔리존] '로열 워런티'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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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문장(紋章),'로열 워런티 디자인(royal warranty design)'이 올 가을 명품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로열 워런티는 영국 등 유럽의 왕실들이 최고 장인에게 수여해온 일종의 품질 보증서.
이 보증서에 찍혀 있는 왕가의 문장이 하이 패션을 이끄는 디자인 모티브로 떠오르고 있는 것.
프라다 펜디 셀린느 고야드 등 유럽의 유명 브랜드들은 이달 초 로열 워런티 디자인 가방을 일제히 내놓았다.
90여년 전 이탈리아 왕실 공식 납품 업체였던 프라다는 마지막 왕가인 사보이의 엠블렘으로 핸드백을 장식했다.
프라다는 가방의 모양과 컬러를 극도로 단순화시켜 사보이 엠블렘을 최대한 돋보이게 디자인했다.
프라다는 겨울에는 왕실 문장이 찍힌 재킷과 카디건을 내놓을 계획이다.
말안장,부츠와 같은 승마용품을 왕족에게 납품했던 펜디는 로열 워런티 디자인에 말 그림을 채용했다.
은회색과 실버올리브컬러 두 종류를 판매 중이다.
영국 왕실의 지정 상인인 버버리는 지난 6월 남성복 컬렉션에서 윈저 왕가의 문장이 중앙에 크게 들어간 가방을 선보여 눈길을 모았다.
이들 제품의 가격은 150만~300만원.
브랜드 내에서도 꽤 비싼 축에 속한다.
대부분 천(fabric)이 아닌 최고급 소가죽 소재를 썼고 불에 달군 주물로 모양을 찍어내는 '파이어 브랜딩(fire branding)' 기법으로 문양을 표현했다.
올 가을 로열 워런티 디자인의 부상은 패션 비평가들에게도 의외로 여겨지고 있다.
스타일리스트 김수진씨는 "그동안 로열 워런티는 제품의 가장 안쪽 상표 옆이나 한 쪽 구석에서 말 그대로 품질 보증서 역할만 해왔다"면서 "마치 로열 워런티가 제품 디자인의 전부인 듯 보일 정도로 압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데 대해 다소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디자인 홍수 시대에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차원의 선택이라는 시각도 있다.
"백화점에 가서 여성복 매장을 둘러보세요.
모두 비슷비슷하지 않나요.
요즘처럼 정보 전달이나 공유가 쉬운 시대엔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기가 힘들죠.
카피도 심하고.
그러나 로열 워런티는 웬만해선 갖기 힘든 거잖아요.
왕실이 보증한 디자인,아무나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자랑하는 게 당연하죠."
패션전문가 오제형 대표(제이컴퍼니)는 로열 워런티 디자인은 명품업체들이 전설과 저력을 뽑내는 비장의 카드라고 해석했다.
명품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이전과 달라진 것을 그 배경으로 꼽기도 한다.
"얼마전만 해도 200만~300만원짜리 가방을 든 부자들은 브랜드의 로고나 상징물이 크게 노출되는 걸 꺼려했지요.
부러워하거나 질시하는 남의 눈길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신세대 커리어 우먼들을 중심으로 명품대중화(?) 바람이 불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과시하려는 풍조가 나타날 정도로 많이 달라졌잖아요."
의류 머천다이저 박진호씨는 "명품가방을 드는 층이 넓어지고 부자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 덕분에 브랜드 상징을 한껏 강조한 로열 워런티 디자인이 각광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현정 기자 sol@hankyu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