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무부에서 회사법을 개정하기로 결정하고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회사법 개정 특별분과위원회'를 발족시킴에 따라 앞으로 달라질 회사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행 5000만원인 '최저자본금제도'의 폐지,자본금의 절반 이상을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했던 '법정준비금' 적립 한도의 축소,전자투표제 실시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투기적 외국자본의 국내기업 경영권 장악 시도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들의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기업 M&A(인수·합병)가 용이해진 결과,외국자본의 국내 기업 및 금융회사 인수가 늘어났지만 일부 외국자본이 투기적 행태를 보이고 국내 주요 기업들이 경영권 불안의 부작용을 호소하면서 효과적인 기업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이에 법무부는 '기업하기 좋은 법적 환경을 마련한다'는 이번 회사법 개정의 취지에 따라 '다중의결권 주식(multiple voting right)', '포이즌 필(poison pill)', '황금주(golden stock)' 등 다양한 적대적 M&A 방어 수단들의 허용 여부를 검토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중의결권 주식은 2개 이상의 의결권을 지니는 특별주식을 말한다. 이 주식을 활용하면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과는 상관없이 주주의 의결권을 다르게 정할 수 있다. 보다 많은 의결권을 지니는 다중의결권 주식은 그 대신 배당률이 낮게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결과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싶은 대주주들은 다중의결권 주식을 선호하는 반면 일반 투자자들은 배당률이 높은 보통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다중의결권 주식은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허용되고 있으며 특히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들 중에는 스웨덴의 에릭슨과 사브,이탈리아의 피아트,덴마크의 칼스버그 등 해당 국가를 대표하는 주력 기업들이 많다. 극약처방이라고도 불리는 포이즌 필은 외부 세력의 적대적 M&A 시도와 같은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주식을 시세보다 매우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주식매수권을 미리 주주들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일단 포이즌 필이 실행되면 신주(新株)가 싼 값에 대규모로 발행되면서 지분 가치가 급격하게 희석되므로 지분 매입을 통해 해당 기업을 인수하려던 공격자에게 극약과 같은 치명적인 손실을 입힐 수 있다. 이는 1980년대 미국에서 성행하던 기업사냥꾼들의 적대적 M&A를 진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현재도 미국 기업의 약 절반 이상이 활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황금주는 무제한적인 의결권을 지니는 특별주식이다. 그 결과,특정 사안에 대해 기업의 다른 주주들이 모두 찬성하더라도 정부 등 황금주를 보유한 주주가 반대하면 통과되지 못하게 된다. 황금주는 영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에서 공공적인 성격을 지닌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시에 정부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법률적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업경영권 방어 수단들의 도입 및 유지에 대해서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찬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경영진이 외부의 경영권 위협을 막는 데에 불필요한 힘을 낭비하지 않고 장기적인 경영 전략을 실행할 수 있으므로 기업가치 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하는 쪽에서는 기존 경영진과 대주주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없게 돼 주식시장에 공개된 기업이 마치 사(私)기업처럼 운영되는 폐해가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회사법 개정을 통한 기업경영권 방어 수단의 확충이 국제적인 논쟁거리로까지 부각되는 양상이다. 올해 일본이 적대적 M&A를 규제하는 내용의 회사법 개정을 추진하자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투자은행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내에 법인을 설립하지 않고 연락사무소만을 둔 외국기업의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세력이 해당 기업 이사회에 투자 의도와 향후 계획을 담은 서한을 보내도록 하는 개정안에 대해 외국계 투자기관들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는 물론 일본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며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앞서 유럽에서도 역내 국가간 M&A를 활성화하고자 경영권 방어 수단의 사용을 제한하려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시도가 국가 간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좌절된 바 있다. 다중의결권,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의 필요성을 주장한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의 반대로 이들 수단의 존속 여부는 개별 국가의 선택사항으로 남게 됐다. M&A를 활성화하면서도 적절한 수준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갖추는 것이 우리는 물론 모든 나라들의 과제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조영무 선임연구원 choym@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