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회가 끝내 무산(霧散)될 모양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어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협의요청에도 불구하고 총회불참의사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국가망신을 자초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총회에는 43개국에서 600여명의 대표단이 참석할 예정이었던 만큼 국가이미지 제고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특히 ILO 가입 14년 만에 노·사·정(勞使政)이 힘을 합쳐 유치한 대회인데다 사무국이 위치한 방콕 이외 지역에선 처음 열리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그런데 개최일을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대회 유치 당사자의 한 축인 노동계가 불참을 공식화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불편한 노정관계에 따른 노동부장관의 퇴진 요구라는 순수한 국내문제를 불참 이유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누워서 침뱉기가 아닐 수 없다. 양대 노총은 "ILO총회 불참은 노정관계 파탄(破綻)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런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노정관계가 틀어진 것은 노동계의 강경일변도 투쟁노선에 근본원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설령 정부에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집안 싸움을 위해 국제기구의 공식 회의를 투쟁수단으로 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노동계는 이번 결정을 그동안 각종 비리 사건 등으로 추락한 위상을 만회하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지 쇄신은커녕 얼마나 이기주의에 함몰돼 있는지 더욱 선명히 부각시켰을 뿐이다. 정말 실망스럽다. 지금이라도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