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유제(告由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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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유교 전통의식에서 아직도 존재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유제(告由祭)다.
주자학의 전래와 함께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왔으니 600년은 족히 되는 셈이다.
'고유'는 '까닭을 고한다'는 뜻인데,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그 사유를 종묘나 사당에 알렸다.
이때 지내는 제사가 바로 고유제인 것이다.
고유제는 민간인들 사이에 크게 성행했다.
풍년을 기원하는 저수지에서,집을 지은 후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낙성식에서,마을의 큰 나무를 베어 낼 경우에도 진혼제 형식의 고유제를 치렀다.
흔히 말하는 '고사'라 이해하면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고유제는 벼슬을 받고 장자를 낳고 혼례를 치르고 집과 분묘를 옮길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출입고라 해서 집을 드나들 때마다 행선지를 밝히는 고유제를 지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스포츠 구단의 출정식이나 문화행사,이성계나 논개 등 역사적인 인물들의 영정을 옮길 때에 고유제를 지내는 모습을 접하곤 한다.
엊그제는 성균관대학교 보직교수들이 후기 졸업식에서 학위복을 갖춰 입고 고유제를 지냈다.
"사회에 나가는 제자들을 부디 살펴 주십사"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았을 게다.
교수들의 고유제는 가뜩이나 극심한 취업난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요즘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가장 무서운 말이 '너 취업됐느냐'하는 유머라니 그 심각성을 대충 짐작할 만하다.
전교생이 '토익학과 학생'이라 할 정도로 도서관 열람실에는 전공서적 대신 토익관련 책들이 놓여 있는 것도 취업풍속도의 일그러진 한 단면으로 다가온다.
학생들의 낙서판 역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반영하듯 고민과 현실을 풍자하는 패러디로 가득 차 있다.
사랑과 우정,인생을 고민하던 과거의 낙서판과는 사뭇 다르다.
어쨌든 교수들의 애틋한 제자 사랑이 고유제에서 진지하게 전해오는 것 같다.
이제 막 사회 초년병으로 발을 내딛는 제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고유제를 지낸 교수들이,다음엔 제자들의 성공에 감사하는 고유제를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