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중반 세계무역의 중심지는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렸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었다.동·서양의 상인들이 한 데 집결했던 도심 지역은 그 중에서도 핵심 상권이었다.지금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위치한 ‘그랜드 바자르(Grand Bazzar)’가 바로 그 곳이다.


그랜드 바자르는 지붕을 갖춘 실내 재래시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고 규모도 최대다.부지 1200여평(4000㎡)에 점포가 5000여개로 2만5000여명이 일한다.출입구만 18개나 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자칫 길을 잃기 일쑤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방문객 수도 엄청나다.


하루 내방객이 내·외국인을 합쳐 평균 50만명을 넘는다.


관광객이 많은 여름철에는 60만명에 이르기도 한다.


연간으로 치면 어림잡아 2억명 가까이 찾는다는 얘기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시장'인 셈이다.


지난해 4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터키를 방문했을 당시 영부인 로라 부시 여사가 테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전면 통제한 가운데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이곳을 둘러봤다는 일화도 있다.


정확히 1461년 문을 연 그랜드 바자르가 540년 넘게 명성을 떨치고 있는 비결의 요체는 명품(名品) 카펫에 있다.


흔히 카펫 하면 아라비아(지금의 이란) 제품을 떠올리지만 터키 헤레케(Hereke) 산은 오히려 그것보다 값을 더 쳐주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힌다.


이 곳 상인들은 과거 이란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가가 이슬람 세력에 무너져 탈출할 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왕실에서 쓰던 진귀한 고가의 카펫을 내다팔았고 그것이 세계에 퍼지는 과정에서 아라비아 카펫이 유명해진 것일 뿐 품질이 헤레케 산을 앞서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5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헤레케 카펫은 제작 기법도 독특하다.


아라비아 카펫은 매듭이 한 겹이지만 이 카펫은 두 겹으로 매듭을 만들어 더 튼튼하다.


신제품보다 오래된 것이 더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견상으로는 낡아 보여도 그만큼 오랫동안 밟고 다녀 단단한 데다 원래 그대로의 무늬와 품질을 유지한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어서 가치를 더 쳐준다.


카펫은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졌는지가 중요하다.


㎠당 실이 몇 개 들어가는지,즉 모듈 수에 따라 가치가 다른데 많을수록 좋다.


헤레케 카펫이 비싼 이유도 다른 지방 것은 ㎠당 모듈 수가 10×10 정도인 데 반해 이것은 20×20이나 되기 때문이다.


또 카펫은 울·면보다 얇은 실크로 짠 것이 더 비싸 100% 실크로 만든 헤레케 산은 1㎡에 1500달러나 되는 것도 있다.


카펫만 50년간 팔고 있는 토박이 상점 '케말 에롤'에서 일하는 알리 게르첵씨는 "터키 다른 지방에서 만든 카펫은 가로 60cm 세로 150cm짜리가 300~400달러이지만 헤레케 산은 아무리 싼 것이라도 700~800달러는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예전에 왕이나 장군들이 쓰던 '안틱 카펫'은 워낙 귀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면서 "15년간 일하면서 본 왕실용 헤레케산 '안틱 카펫' 중에는 100만달러짜리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랜드 바자르가 설립된 배경은 다소 엉뚱하다.


이스탄불을 점령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왕) 모하메드가 빈곤층을 도울 목적으로 소규모 상점들을 만든 게 기원이다.


동양에서 실크 로드를 타고 이스탄불로 건너와 교역을 하는 대상(隊商)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상대로 호텔과 낙타 말 등을 제공하는 시설들이 성황을 누려 점차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지금의 그랜드 바자르가 됐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오랜 연륜으로 신뢰도가 높아 과거 외환위기 때는 외환시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민영 은행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외국환 환전이 거의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한창 때는 하루 4000만달러 정도가 거래됐다고 한다.


지금은 주로 은행에서 외환 거래가 이뤄지지만 아직도 TV에서는 정부가 공시하는 환율과 함께 이 곳 환율을 소개한다.


정부 환율보다 이곳 환율이 넉넉하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다.


높은 명성을 반영,상점의 자리값은 엄청나다.


상인연합회장인 하산 프라트 박사는 목 좋은 시장 내 메인 도로 쪽 상점을 사려면 ㎡당 100만달러는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차료도 15~20㎡짜리를 기준으로 메인 도로 주변은 한 달 1만달러에 이르며 그나마 1~2년치를 한꺼번에 현금으로 내야 한단다.


후미진 쪽이라도 6개월~1년치를 선납하는 조건으로 월 1000~2000달러는 줘야 한다.


얼마 전에는 5년치를 일시에 내고 상점을 임차해 입주한 외국인 상인도 있었다고 하산 회장은 귀띔했다.


이곳 상인들이 "우리는 시장의 일부"라며 큰소리 치는 것도 괜한 허풍이 아니라 백만장자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스탄불(터키)=문희수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