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미술 100년' 전은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측이 1년 반의 준비기간을 거쳐 야심있게 추진한 대규모 기획전이다.을사늑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된 1905년부터 '4·19'이전까지의 회화 조각 디자인 사진 공예등 8백여점이 출품됐다. 한국 근·현대미술 1백년의 역사를 한 번의 전시로 마무리할 수 없어 ‘4·19’이후의 작품들은 내년에 보여줄 예정이다. 출품작중 관심을 끄는 작품은 최지원의 목판화 '걸인과 꽃'. 1939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출품해 입선한 작품으로 그동안 실물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국립현대미술관측이 소장자를 찾아내 이번에 공개하게 된 것이다.선전에서 입선한 한국인 최초의 판화라는 게 국립현대미술관측의 설명이다. 호가 주호(柱壺)인 최지원은 정확한 생몰연대가 불명(不明)한 작가다. 지인들로부터 '평양꼬마 3총사'로 불리던 장리석 황유엽 최영림의 증언에 따르면 최지원은 이들과 나이가 같았거나 이들보다 한두 살 어렸고 해방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이 가난해 평양의 광성고보 2학년을 중퇴하고 평양박물관의 학예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오노 다다하키로부터 판화 제작기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평양에서 그림을 그리던 '평양꼬마 3총사'를 비롯해 박수근 등 화가들이 최지원의 호를 따서 '주호회'란 모임을 갖고 활동할 정도로 영향을 미친 작가였다. 일본인에게는 '한국의 밀레'라는 평을 받았다고도 한다. 다음은 이 판화 소장자를 찾아낸 정준모덕수궁미술관장이 전하는 비화다. 소장자는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이 방문하자 처음엔 300만원에 팔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미술관 책임자가 '그 정도 가격이면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표정을 짓자 금방 입장을 바꿔 판매가를 500만원으로 올려버렸다. 당장 미술품을 구입할 수 없었던 미술관측은 또 다른 개인소장가를 앞세워 이 판화를 500만원에 사게 한 후 "만약 정부의 미술품 심의에서 (구입이) 퇴짜를 맞을 경우 당신이 가져도 좋다"는 조건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시가 열린 지 며칠 안 돼 처음 소장가가 찾아와 1000만원을 줄테니 작품을 되돌려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이 판화의 미술사적 중요성이 다뤄진 후 어떤 컬렉터가 2000만원에 사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누구의 품에 안길지는 조만간 열릴 예정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구입 심의에서 판가름난다. 'OK'면 정부 소장품이 되는 것이고 'NO'면 개인소장가가 갖게 된다. 최지원은 키가 150cm일 정도로 단신인 데다 학벌도 별 볼일 없는 화가였다. 선만 보면 퇴짜 맞기가 일수였는 데도 당시 평양에서 고무신공장을 경영하는 부잣집 딸을 짝사랑했다고 한다. 작품에는 걸인 차림의 한 남자와 물동을 이고 가는 여인이 등장한다. 이 여인이 그 고무신공장집 딸이고 걸인 차림의 남자는 작가 자신이다. 걸인 주제에 꽃을 들고 있는데 그 여인에게 줄까 말까를 고민하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 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은 한국 구상미술계의 원로인 장리석 화백(89)이 최지원에게 직접 들었다고 증언한다. 국내에서 판화는 1910년 나혜석이 월간지 '개벽'을 위해 단색목판화를 제작했다는 등 기록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1958년 '한국판화협회'가 결성되던 무렵을 한국현대판화의 출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지원의 '걸인과 꽃'이 새로 발굴됨에 따라 한국현대판화의 출발점은 선전에 이 작품을 출품한 1939년으로 앞당겨지게 됐다.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