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에 매달려 구조되는 사람들,공항에 즐비하게 누워 있는 환자들,시신을 모포로 덮어주는 사람들.' 요즘 미국 방송과 신문에서 자주 접하는 모습이다. '미국 최악의 자연재해'로 일컬어지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자리에 남겨진 피해자들의 영상이다. 모두가 애틋한 모습이어서 이방인조차 코끝이 찡해옴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가슴 찡한 모습을 보다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흑인이란 점이다. 어쩌다 황인종은 있어도 백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울부짖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흑인이고,상점에서 물건을 약탈해 가는 사람도 흑인이다. 흑인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숫자가 많기도 하거니와 대부분 가난하기 때문이다. 흑인은 뉴올리언스시 전체 인구의 67%에 이를 정도로 많다. 대부분 극빈층인 흑인들은 '주민 소개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가 없어 잔류를 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대응마저 늦어져 흑인들의 피해는 엄청나게 커졌다. 그러다보니 부시 행정부에 대해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방글라데시나 바그다드에 사는 것 같다"(데이비드 도널드 전 하버드대 교수)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전쟁을 강행했던 부시 행정부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국민에겐 무능과 무관심으로 일관해 수치스런 나라로 만들었다"(모린 다우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피해자 대부분이 흑인이어서 구조가 늦어졌다"는 주장이다. 하원의 흑인의원 모임인 블랙코커스 소속 의원들은 "만약 백인 밀집지역에서 이 같은 사태가 났다면 부시 행정부가 늑장대응했겠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흑백문제는 미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이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의 초기 대응이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고 해도, 고의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지도자의 순간 판단 실수로 인해 카트리나 못지 않은 폭발력을 갖고 있는 흑백문제가 표면에 부상하고 있는 분위기다. 카트리나의 위력에 놀라면서도 국가 지도자의 판단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