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가공할 후폭풍으로 미국 경제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월가와 유력 투자회사들이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낮추고 있는 가운데 9월에만 미국 내 일자리가 50만개 이상 줄어들 것이란 비관적 관측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경제가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와 2001년 9·11 테러 사태에 버금가는 위기상황을 맞을 것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4일 카트리나가 엄청난 인명 및 재산 피해와 함께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대로 끌어올려 '21세기 첫 오일쇼크'를 불러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월가에선 오는 20일 열릴 예정인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를 동결,경제난을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란 관측이 강해지고 있다. ◆일자리 급감 불가피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카트리나로 피해가 컸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앨라배마주 모빌,미시시피주 빌록시 등의 비농업부문 일자리수는 평상시 100만명대에서 수십만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 "이라고 보도했다. 민간 경제연구소인 하이프리퀀시이코노믹스의 이안 셰퍼드슨 이코노미스트는 더 나아가 "카트리나로 9월 미국의 일자리수 감소는 50만개에 달해 1차 오일 쇼크 직후인 1974년 12월 이후 30여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신규 일자리수는 지난 7월 24만2000명,8월에는 16만9000명으로 매달 20만명 내외로 늘어왔다. 하지만 앞으로 몇 달간 수십만명씩 일자리가 줄어들면 가계소득 감소→소비지출 감소→미국 경제성장의 동력 손실 등의 악순환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카트리나 피해액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피해 규모를 500억달러로 전망한 지 하루만인 지난 2일 미국 자연재해 위험 평가회사인 리스크매니지먼트솔루션스는 "1000억달러를 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발(發) 에너지 쇼크 우려 뉴욕타임스는 "2주 전 만해도 유가가 100달러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에 대해선 모두들 코웃음을 쳤지만 이제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미국발 오일쇼크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특히 원유 생산량보다 미국 내 정유능력의 부족이 더 문제라고 진단했다. 미국에선 1976년 이후 정유설비가 추가로 건설되지 않아 정제시설이 절반 이상 감소한 상황에서 카트리나의 타격으로 휘발유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주 원유가는 2% 오른 반면 휘발유 가격은 14% 인상됐다. 클로드 만딜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원유 정제시설이 파괴된 미국이 앞으로 유럽산 석유 구매량을 크게 늘릴 경우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가 닥칠 수 있다"면서 "미국은 이미 유럽에서 휘발유를 사들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월가에선 미 FRB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기 위해 오는 20일 FOMC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당초 올해 안에 세 차례 금리 추가 인상이 예상됐지만 카트리나로 인해 한 차례만 올릴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오는 7일의 마이클 모스코우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8일로 예정된 재닛 옐린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의 연설 내용이 주목된다. FOMC 회의의 기초자료가 될 베이지북(오는 7일 발표 예정)이 카트리나의 경제적 영향을 어떻게 언급할 것 인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국 원조 손길 잇따라 각국의 원조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은 물론 미국과 적대 관계인 베네수엘라와 쿠바,쓰나미(지진해일) 최대 피해국이었던 스리랑카까지 원조에 동참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국영 석유회사 시트고의 미국 지사를 통해 미국 적십자에 100만달러를 전달했다. 스리랑카는 미국 적십자를 통해 2만5000달러를 내놨다. 독일은 공군 전세기편으로 백신 등 의약품과 정수시설을 미국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군용기 군함 병원선 텐트 발전기 정수설비의 지원을 약속했다. 호주는 800만달러를,일본은 20만달러를 미국 적십자를 통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