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인간의 기술력은 멕시코만에 불어닥친 자연의 분노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미국에는 지금 종합적인 에너지 위기가 오고 있다. 멕시코만이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입은 피해 규모는 물이 다 빠져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전례 없는 것이 될 게 확실하다. 멕시코만은 미국 석유 수요의 35%,천연가스의 20%를 공급하는 곳이다. 이곳 플랫폼과 정유시설이 대부분 문을 닫았고 해저 산사태로 바다 속 송유관까지 피해를 입었다. 허리케인 때문에 미국내 공급이 중단된 원유량은 150만배럴로 걸프전쟁 때보다 훨씬 적지만, 이번엔 미국 전체 천연가스 공급이 16% 끊겼고 정유시설도 풀가동되고 있던 상황에서 10%나 활동을 멈췄다. 게다가 전력 공급도 중단돼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 며칠간 미국 휘발유 가격이 폭등한 것은 멕시코만 석유를 내륙으로 실어나르는 송유관이 단전 여파로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미국은 전략비축유를 7억배럴 정도 쌓아놨고 이중 일부를 방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멕시코만에서 일어나고 있는 총체적 에너지 위기,즉 플랫폼이 재가동되더라도 디젤연료 부족으로 플랫폼에 접근할 배를 띄울 수 없고 석유를 생산해도 전기 공급 차질로 제때에 정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은 우리에게 에너지 안보 전략을 새로 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쓰고 있는 에너지 전략은 1973년 오일쇼크 때 만들어진 것이다. 전략비축유 구상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전략비축유를 쌓는 동안 관심사는 늘 중동이어서 국내 문제로 이것을 방출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테러리즘, 캘리포니아 전력난, 동부해안 대정전, 이번에 카트리나에 이르기까지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2차 세계대전 때의 에너지 전략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나치의 U보트가 미군의 대서양 연료 수송망을 파괴하려 했던 당시 미국의 에너지 전략은 모든 공급망과 인프라의 안보를 철저히 사수해 생산지에서 사용자에게까지 에너지를 안전하게 공급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렇게 광범위한 에너지 안보에 관한 구상은 정부와 민간 부문의 더욱 폭넓은 협력을 필요로 한다. 잉여분을 비축하고 유사시에 대비해 공급원을 분산시키고 대안을 마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 변화에 재빨리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 이를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관련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이미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강조한 적이 있다. 석탄 생산 지역인 웰시에서 페르시아만 산유지로 해군을 이동 배치하면서 "확실하고 안전한 석유 공급은 오직 공급원 다각화에 달려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도 "때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니 미리 대비해두는 게 좋을 것"이라는 금언을 남겼다. 허리케인 시즌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대책은 없다. 전 세계 에너지 공급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볼 때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다가오고 있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 ◆이 글은 다니엘 예르긴 미국 캠브리지 에너지리서치학회 회장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카트리나 위기'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