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이 '이례적인 판결'일지는 몰라도 '튀는 판결'은 아닙니다." 지난 8일 '백수(白壽)보험' 가입자들과 보험회사 간에 벌어진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1부 이홍철 부장판사(46)는 그간의 판례와는 달리 가입자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보험사의 기업 윤리에 경종을 울렸다. 백수보험은 1980년대 초 보험사들이 노후에 최고 연 1000만원씩의 확정배당금을 지급하겠다면서 약 1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던 보험상품.그러나 은행 금리 등 계약의 전제조건이 변했다는 이유로 보험사들이 가입자들에게 확정배당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아 가입자들과 보험회사 간 소송으로 비화됐다. 이번 사건의 쟁점이었던 확정배당금 지급문제와 관련,이 부장판사는 "계산식만 계약서에 나와 있을 뿐 배당금을 전혀 못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보험사들에 일부 배당금 지급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기까지 법률적으로 무리한 해석은 전혀 없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판사는 지난 6월 대우 오토론 부실을 둘러싼 소송에서도 보험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판결로 업계에선 '보험사 킬러'라는 별명을 듣고 있다. 그는 판결문에서 상투적인 한자어 등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배석 판사인 박성윤 판사는 "판결문 초고를 작성해 보고하면 한자어나 일본어 투의 문장들은 죄다 고쳐 놓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경제 용어도 쉽게 풀어 쓰도록 지시한다"고 전했다. 이 부장은 사시 23회 출신으로 1983년 수원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