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을 폐쇄한 사연이 나온다. "양주로 향하는 숙정문을 폐하고 쓰지 않으니,속설로 전해지기로는 이 성문을 열어두면 성안에 상중하간지풍(桑中河間之風)이 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중하간지풍은 요즘 말로 하면 '풍기문란'이다. 역시 실학자인 조재삼도 "숙정문을 열어두면 양가집 부인들에게 음풍(淫風)이 일어 닫아 두었다"고 적고 있다. 다른 성문과는 달리 산속에 축조된 숙정문의 폐문을 두고는 풍수지리상의 또 다른 이유도 전해진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만들어진 숙정문은 18년 동안 사용되다가 태종 13년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시켰는데,이는 풍수지리학자 최양선이 "경복궁의 양 팔이 되는 창의문과 숙정문을 통행하는 것은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려서 라고 한다. 원래 이름이 숙청문(肅淸門)이었던 성문이 숙정문으로 바뀐 연유도 뚜렷하지 않다. 다만 중종반정 이후로 추측할 뿐인데,모반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 곳에 모여 조정을 위협했기 때문에 '엄히 다스린다'는 뜻으로 '숙정'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1968년 1월에는 북한의 무장공비가 이 길목을 통해 청와대를 공격하려다 실패했다. 그 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또다시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됐다. 북악산 자락의 숙정문이 내년 4월부터 개방돼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엊그제 언론에 먼저 공개된 숙정문 일대는 37년 동안의 비경을 간직한 한 폭의 동양화였다. 내친 김에 일제시대에 훼손된 서대문과 서소문의 복원작업도 서둘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 성곽의 4대문 4소문이 완성되는 셈인데,여기에 고궁들을 포함하면 세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풍수지리설과 속설에 시달리고,모반과 공비침투로라는 역사의 고통을 안은 숙정문이,이제 더할 나위없는 시민의 포근한 안식처로 돌아온다니 그저 반가운 마음뿐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