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배우고 나니 멀어졌던 아들이 돌아오더군요."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최민수군의 아버지이자 대일외국어고 과학 교사인 최계성씨(44). 그는 '마법사'로 통한다.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때마다 간단한 마술을 보여주면서 얻은 별명이다.


중·고교생들이 열광하는 마술을 불혹이 넘은 늦은 나이에 배운 것은 순전히 아들 때문이었다.


마술사가 되겠다는 아들을 이해해 보려고 마술을 배웠다가 그만 마술의 매력에 푹 빠져든 것.


외아들인 민수군이 중학교 2학년이던 3년 전. "마술사 이은결의 책을 보고 난 아들이 마술에 빠져들면서 학업을 게을리하더라고요.


제법 공부를 잘해 특목고를 보낼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마술을 시작하고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어요.


너무 빠져드는 것 같아 야단을 자주 쳤어요.


이 때부터 아들과 급격히 멀어졌어요."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한번은 집에 있는 마술 도구 전부를 내다 버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민수의 마술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이 때 마음을 연 것은 민수의 어머니였다.


"아이가 중학교 졸업축제에서 마술 공연을 하는 것을 보더니 아내가 태도를 바꿨습니다. 그렇게까지 민수가 즐거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나요."


최씨가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아들을 포기하기 전에 '왜 그렇게 마술에 흥분하는지 나도 한번 경험해 보자'고 마음 먹은 것이 계기가 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


"직접 마술을 배우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마술을 배우면서 민수와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됐어요. 아들이 제가 마술하는 장면을 캠코더로 찍어서 다시 볼 수 있게 하고 개인 지도도 해 주고… 급기야 마술을 하고 싶어 집에 가는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빠져들게 됐죠."


최씨는 지난 8월 민수군이 참가한 '서태지 매니아 페스티벌'을 본 후 아들의 매니저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프로 마술사들과 팀을 이뤄 마술 공연을 하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게 보인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삶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기 힘들죠.하지만 민수는 마술을 하면서 가르치고 싶었지만 가르치기 어려웠던 것들을 스스로 깨우쳤어요.


민수가 마술 분야에서 얼마만큼 성공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마술에서 보여주는 열정만 가지고 있으면 장래에 무엇을 하더라도 잘할 수 있겠다 싶어요."


최씨와 최씨의 아내는 요즘 들어 민수군을 뒷바라지하느라 여념이 없다.


민수군이 내년에 개최되는 국제마술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게 됐기 때문이다.


주말이 되면 마술 비디오를 보며 아이디어를 짜고 구하기 힘든 마술 도구들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민수군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내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최씨는 인터뷰 말미에 아들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아버지들을 위한 조언을 남겼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핀 다음 그것을 진지하게 배워 보세요.


아이와 같은 취미를 가지게 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대화도 많아집니다.


공부 잘하는 아들 트럭으로 가져다 줘도 민수랑은 안 바꿀 겁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