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역사책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꼽는다. 사기를 사서의 백미로 만든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열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시대나 조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시대정신과 조직철학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연구하는 게 효과적이면서도 재미있다. 그런 점에서 '슈퍼 엑설런트!'(최준영 외 지음,랜덤하우스중앙)는 단순히 '최종현'이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 기업 발전사와 대한민국 성장사를 담고 있는 동시에 SK라는 기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 충실한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최종현 회장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기업을 일궈낸 기업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50년이 우리나라 역사 전체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이 정착된 시대라고 볼 때 1세대 기업가들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만든 '파운딩 파더'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최종현 회장은 기업경영의 '실천가'에 머물지 않고 한국적인 '경영시스템'을 만들어 간 선구자이기도 했다. 다른 1세대 기업가들이 천재적인 경영감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통해 기업을 성장발전시켰다면 최종현 회장은 서구의 체계적인 경영경제이론을 토대로 한국적인 기업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고유의 경영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이 스스로 진화해나가며 성장발전하는 기업을 만든 인물이다. 다른 1세대 기업가들이 갖지 못했던 '체계적 안목'이 그에게 있었고 경영학자들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기업경영의 실제'를 경험하고 체화시킬 수 있었다. 그가 꿈꾸고 만들어 간 한국적 경영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믿음에 있다. 서구의 경영이론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그는 '인간'에서 본 것이다. 그의 슈퍼엑설런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가능에 도전해 성공하고 말겠다는 목표지상주의가 아니다. 사람이 자발적이고 의욕적으로 일 할 때 만들어 내는 성과는 통념에 갇힌 인간능력의 극한을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는 그래서 평생을 두고 '사람 키우는 일'에 매달렸다. 그가 70년대에 이미 세계와의 경쟁을 생각하며 민둥산에 나무를 심고 인재를 유학 보내는 심모원려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가 사람을 키우려 했던 것은 자기 기업에 쓸 인재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6만달러를 넘어서는 세계일등국가가 될 수 있고 돼야 한다고 믿었다. 스스로는 그러한 나라에 맞는 기업과 사람과 학문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아 씨앗을 뿌렸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그러했다. 그가 전경련 회장 시절 일등국가 만드는 데에 얼마나 공을 쏟았는지를 나는 당시 한국경제연구원장으로서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본 그는 SK를 세계일류기업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을 세계일등국가로 만드는 길을 고민하고 실천한 우리 사회의 '파운딩 파더'였다. 254쪽,1만3000원. 좌승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