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서남쪽을 향해 달리면 허베이(河北)성 안궈(安國)시에 닿는다. 입구에는 '전국의 약재는 안궈에 모인다'란 간판이 걸려있다. '천하약도(天下藥都:세계적인 약재 도시란 뜻)'로 불리는 도시답다. 도로 주변에 쫙 깔린 약재 재배지를 지나 시내 북쪽에 이르니 '약(藥)'자가 들어간 간판이 즐비한 곳이 나온다. 안궈의 대표적인 약재시장인 '동방약성(東方藥城)'이다. 안궈시는 인구 40만명의 작은 도시지만,동방약성에는 중국 전역에서 나오는 2000여종의 약재가 모인다. 여기에서 나오는 약재들은 중국은 물론 해외 20여개국으로 나간다. 이곳에서 1년에 거래되는 약재는 10만t,금액으로는 50억위안(약 6250억원)에 이른다. 지난 5월 열렸던 안궈 약재 교역회에서는 나흘 동안 무려 20억위안(2500억원)어치가 거래되기도 했다. 현재 한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사용되는 한약재의 70% 이상은 중국산(주중 한국대사관 전은숙 식약관)이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안궈시장을 통해 흘러 나간다는 게 현지 약재상들의 설명이다. 안궈에서 약재 거래는 대부분 동방약성을 거친다. 지난 95년 시 정부가 8억위안(10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이 시장은 연건평 60만㎡(18만1800여평)에 2층짜리 대형 매장과 주변의 600여개 약재 상점으로 구성돼 있다. 하루 유동인구는 평균 2만여명에 달한다. 지난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호황을 누릴 때는 하루에 1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대형매장 입구 양쪽에는 '약초는 안궈에 와서 비로소 약이 되고,약은 안궈에 와야 향이 난다'란 간판이 걸려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점포 5000개에서 나는 약재의 향이 코를 찌른다. 2층에 있는 점포 한 곳에서 백두산에서 재배된 각종 삼을 팔고 있는 자오후이빈(焦會彬)씨는 "1년 임대료가 4000위안(50만원)이지만 연간 순수입은 4만위안(500만원)에 달해 재미가 짭짤하다"고 귀띔했다. 10년째 약재를 팔고 있다는 그는 "베이징에 가면 800위안은 줘야 하는 서양삼 1㎏ 가격이 이곳에서는 180위안"이라며 계속 사라고 권유했다. 주변 점포에는 삼 녹용 같은 약재부터 개미와 거북이 껍질 등 흔치않은 동물성 약재도 즐비하다. 이 시장을 걷다보면 "뭘 원하느냐"며 따라붙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중개인들이다. 안궈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국인 윤영호 명성약재 사장은 이들을 '걸어 다니는 약재의 데이터베이스(DB)'라고 부른다. 그는 "약초를 싣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주머니들은 어김없이 중개인들"이라며 "이들은 누가 어떤 품질의 어떤 약재를 갖고 있는지 귀신처럼 알아내 머릿속에 정보를 담고 다닌다"고 설명했다. 중개인들은 대략 1000여명으로 거래액의 0.5% 정도를 수수료로 챙긴다. 한 달 평균 수입은 1500위안(18만7500원) 수준이라고 한다. 동방약성이 성황을 누리는 데는 약재 산지와 직결되는 '직소(直銷.산지 직접 판매)' 시스템으로 신뢰도가 높다는 점도 큰 몫을 한다. 점포를 임차해 산시(山西)에서 직접 가져온 지황을 6년째 팔고 있다는 리진타이(李金泰)는 "주인이 잠자리는 물론 창고도 제공해 같은 고향 출신 7명과 함께 이곳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면서 "1년에 5만위안(625만원)을 번다"고 말했다. 약재를 직접 재배해 파는 상인들도 많다. 집안 대대로 약재를 재배해왔다는 왕잔민(王占民) 창안중약재 사장은 "88년 창업한 이후 연간 3000만위안(37억50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안궈 주민의 70%가 약재를 재배하거나 가공해 판매하는 업으로 먹고 산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아이들도 약재에 관한 지식이 뛰어나다고 한다. 안궈 약재시장의 역사는 1000년 전인 11세기 송나라 때부터지만,출발점은 서기 1세기 후한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 출신으로 당시 '신의(神醫)'로 칭송받았던 '피통'의 고향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송나라 때 안궈 출신의 또 다른 명의가 왕족 송친왕의 병을 고치자 황제가 "피통의 신령이 작용했다"며 그의 사당을 야오왕먀오(藥王廟.약의 왕을 모시는 사당이란 뜻)로 승격시킨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중국 주요 약재시장마다 야오왕이 있지만 황제가 직접 야오왕으로 봉한 것은 피통이 유일하다"고 안내인은 자랑한다. 이런 연유로 이곳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삼국지에 나오는 전설적인 명의로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화타의 인물상조차 야오왕먀오 안에서는 다른 9명의 중국 명의들과 함께 야오왕(피통) 양 옆에 비켜서 있을 정도다. 이 야오왕먀오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정기적인 약재교역이 이뤄졌고 이는 시장으로 발전했다. 명나라 때는 "안궈를 지나지 않은 약은 가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안궈 약재시장은 1938년 일본의 침략으로 상인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발전을 거듭해왔다. 안궈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82년부터 야오왕먀오 인근의 약재시장을 세 차례에 걸쳐 확대 이전해 지금의 동방약성을 조성했다. 2002년부터는 세계화를 겨냥,대형 매장과 호텔 은행 세관 검역 수출입회사 등을 한 곳에 모은 국제 중약재 상무센터를 따로 짓고 있다. 그러나 안궈 약재시장도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작년 7월부터 일정한 위생 요건을 갖추지 않은 가공업체와 유통업체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면서 상당수의 약재 가공 및 유통상들이 지하시장으로 숨어 버렸다. 현지 상인들은 약재시장이 기업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 대세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칫 1000년 역사를 가진 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안궈(허베이성)=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