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차가운 날


국화가 피는 것은,


한 잎 한 잎 꽃잎을 펼 때마다


품고 있던 향기 날 실로 뽑아


바람의 가닥에 엮어 보내는 것은,


생의 희망을 접고 떠도는 벌들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그 여린 날갯짓에


한 모금의 달콤한 기억을


남겨 주려는 이유에서이다


그리하여 마당 한편에


햇빛처럼 밝은 꽃들이 피어


지금은 윙윙거리는 저 소리들로


다시 살아 오르는 오후,


저마다 누런 잎을 접으면서도


억척스럽게 국화가 피는 것은


아직 접어서는 안 될


작은 날개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길상호 '국화가 피는 것은' 전문




국화가 아름다운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대부분의 다른 꽃들이 지고 난 후,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꿈을 잃은 벌들을 위해서 혼신의 힘으로 피어나기때문이다.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 슬픔을 담고 만개한 국화와,연약한 날갯짓으로 꽃잎 속에 깃드는 벌들의 눈물겨운 공존.그 짧은 풍요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다시 이별을 준비할 것이다.


삶은 늘 막막하고 생멸의 아픔을 막을 길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성을 다해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국화가 아침마다 누런 잎을 접고 억척스럽게 피어나듯이.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