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고가 추석 선물이 팔리지 않고 있다. 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30만원대 고가 선물세트 판매대는 썰렁한 반면 15만~20만원짜리 선물 매대에 손님이 몰리고 있다. 할인점에서도 3만원이 넘는 선물은 매기가 뚝 떨어졌다. 대부분 2만원대 이하인 건어물세트나 1만원대 이하의 생활용품 세트가 올해 인기 상품으로 부상했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이 선물세트 예약 판매에 들어간 8월26일부터 이날까지의 판매 실적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보다 판매단가가 약 20% 하락했다. 정연성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정육담당 바이어는 "지난해에는 25만~30만원짜리 상품이 가장 인기가 있었으나 올해는 20만원 안팎의 정육세트가 많이 나갔다"면서 "인기가 높은 20만원 내외 냉장육은 추가 생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청과류도 하향 구매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10만~12만원대 상품보다 5만~10만원대 매출이 급증,전체 청과세트 판매액의 43%에 이르고 있는 것.롯데백화점이 실시한 선물세트 예약 판매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10만~25만원대 선물세트를 주문,지난해보다 5만원 정도 덜 쓴 것으로 나타났다. 예약 판매를 이용한 고객의 70%가 법인임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명절 지출 비용을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진창범 롯데백화점 식품부문장은 "올해는 5만원 이하 건어물세트 매출이 지난해보다 121%나 늘어날 정도로 실속형 선물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밝혔다. 하향 구매 경향은 할인점에서도 뚜렷하다. 이마트의 최대 점포인 서울 은평점의 경우 아예 2만원대 이하 상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할인점측은 1만~2만원대 상품이 집중된 조미 김,멸치 세트가 가장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 윤주학 은평점 식품1팀장은 "기업체 대량 구매용으로 인기가 높은 멸치세트의 경우 지난해엔 3만원대가 주로 나갔지만 올해는 고객들이 2만원 이하 상품만 찾는다"면서 "선물 매출이 지난해보다 한 자릿수라도 늘어나면 다행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공단 인근 할인점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선물세트 매장에 들른 고객들이 1만원 이하 상품만 찾기 때문이다. 인천 남동공단 인근에 있는 롯데마트 연수점 관계자는 "법인 고객은 9900원짜리 비누세트를 단체 구입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면서 "체감경기가 지난해보다 오히려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민들의 선물 구매장소인 재래시장도 짠돌이 소비성향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울 중구 오장동 중부시장에서 굴비 가게를 운영하는 G상회 이모씨(48)는 "백화점에 비해 반 값인 데도 5만원이 넘어가면 손님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면서 "이러다 보니 하루 매출이 10만원을 못 넘긴다"고 울상을 지었다.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P상회 주인 변모씨는 "추석이 일찍 찾아온데다 태풍 영향으로 제수용 과일 값이 많이 올라 판매가 부진한 실정"이라며 "어차피 매기가 따라 붙지 않는 고가 상품엔 아예 손을 대지 않고 중저가 상품만 취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창동·안정락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