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4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김쌍수 LG전자 부회장과 장석춘 LG전자 노조위원장이 '2005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교섭'을 위해 마주 앉았다. 이 자리에서 노조는 급격한 환율하락과 내수시장 부진에 따른 대외 경영환경 악화 등을 고려해 올해 임금인상 결정을 회사측에 일임했다. 회사측은 물가인상과 생산성 향상을 감안,'선 경쟁력 확보,후 성과보상'의 경영기조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총액 임금을 4.9%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LG전자 노사는 9년 연속 임·단협을 무교섭으로 타결했다. LG전자 노사는'노경(勞經) 관계'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안정된 노사 문화를 구축하고 있다. 노경관계란 노사관계라는 말이 갖는 상호 대립적이고 수직적인 의미를 대신해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勞(근로자)와 經(경영자)이 제 역할을 다함으로써 함께 가치를 창출한다는 신개념의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LG전자 고유의 용어다. 이처럼 탄탄한 노사관계를 구축하기까지는 LG전자도 몸살을 앓아야 했다. 민주화 바람이 산업현장을 휩쓸던 1980년대 말.LG전자도 이 같은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87년과 1989년 창원과 구미 공장을 중심으로 두차례에 걸쳐 대규모 노사분규가 일어났다. 수백대의 TV 브라운관을 불태우며 농성하던 창원공장의 '전쟁터' 같은 모습은 당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6000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하면서 회사 경영도 낭떠러지 끝으로 떨어졌다. 각 지역 노조 지부장과 대의원 선거 때마다 제1의 공약사항이 '파업'이었던 이 혼돈의 시기에 장석춘 현 노조위원장은 언제나 투쟁의 선봉에 섰다. 현장근로자 차별 철폐와 임금인상을 외치며 면도칼로 자신의 머리를 직접 삭발할 만큼 타협불가능한 '초강성'노조원으로 통했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파업으로 회사가 존폐위기를 겪고 가전제품 1위 자리를 경쟁업체에 넘겨주는 뼈아픈 경험을 하고 난 1990년 초부터 LG전자 노조는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업장 내의 노조 깃발과 선동성 플래카드가 사라졌고,노조원들 사이에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 때부터 회사측도 노조를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시작했다. 노사화합을 최우선 경영과제로 삼고 경영정보를 가감 없이 근로자에게 공개했다. "노사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임원은 등용하지 않겠다"라는 최고경영자의 약속은 노사대립의 고리를 끊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김쌍수 경남 창원공장장 등 경영진은 과감히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결국 먼저 이해하려 들면 상대방도 자신을 이해해 준다는 평범한 진리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 것은 물론 노사가 한몸이 되는 기적을 연출했다. 그후 LG전자는 매년 소리소문 없이 임·단협을 끝내 9년째 무분규를 이어오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노사가 각자 역할을 다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수평적 관계 속에서 신뢰를 구축했다"며 "이것이 과거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새 노사문화를 만든 비결"이라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