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현대백화점 본점 2층 여성의류 매장.서울 개포동에 사는 대학생 김은혜씨(24·연세대 인문학부)는 어머니 신은순씨(45)와 함께 가을 옷을 보러 백화점에 나왔다.


모녀는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매장을 돌며 서로 코디를 해 준다.


어머니 신씨가 입을 옷 두 벌,김씨가 입을 옷 한 벌 등 총 세 벌의 옷을 구입했지만 계산은 물론 신씨가 했다.


언뜻 보기에도 이 백화점에만 함께 쇼핑을 나선 모녀로 보이는 사람들만 스무 쌍이 넘었다.


신씨 모녀처럼 40대 어머니와 20대 젊은 여성이 함께 쇼핑하는 '모녀쇼핑족'이 늘고 있다.


불경기로 용돈 사정이 좋지 않고 과외 자리 구하기도 여의치 않은 '딸'들이 옷을 구매할 때 '어머니 지갑'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선경 현대 무역센터점 'SJSJ' 매니저는 "주말의 경우 10명 중 4명은 모녀 커플"이라며 "이들은 서로 옷을 골라주는 것은 물론 교대로 옷을 입어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백화점 매출이 전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서도 영캐주얼 부문만은 전년 동기 대비 10%대의 매출신장을 계속하는 것은 이 같은 '캥거루 모녀'들의 파워에 기인한 것이라고 백화점 패션분야 MD들은 입을 모은다.


◆패션세대차 점차 줄어든다


이렇게 모녀가 함께 쇼핑하면서 서로 조언을 해주다보니 20대 여성패션과 40대 여성패션의 '세대차'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성 캐릭터 브랜드인 '오브제'의 이영아 마케팅팀장은 "오브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을 겨냥한 제품들이 주류를 이루는데,막상 구매 고객 연령대를 파악해 보면 40대가 30%를 넘는다"면서 "요즘 40대는 몸매와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 20대 옷도 거뜬히 소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초 20대에서부터 시작된 '진(데님) 열풍'이 40대까지 밀려 올라간 것도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닥스 숙녀복에서 브랜드 사상 최초로 '빈티지 데님 바지(헐어 있는 듯한 느낌의 청바지)'를 출시했는데 한 달 만에 동이 나 재생산에 들어간 상태다.


김영순 LG패션 상무는 "과거에는 고객을 연령대별로 나누어 마케팅했다면,최근에는 소재와 스타일에 따라 브랜드를 포지셔닝하는 추세"라며 "이런 경향은 모녀 쇼핑족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고 풀이했다.


◆옷은 한 벌을 사도 좋은 것으로


구매결정권을 쥐고 있는 어머니들이 '옷은 여러 개 사는 것보다 한 벌을 좋은 걸로 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캐주얼도 고가제품만 잘 팔리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임영근 현대백화점 신촌점 MD는 "빈폴,헤지스 등 정통 캐주얼 브랜드는 살아 남는 반면 저가공세로 일관하는 브랜드는 6개월을 못 버틴다"며 "따라서 캐주얼 브랜드는 20대 젊은이들의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40대 어머니들을 만족시킬 원단 품질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