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동 훈 < 국민대 법대 교수 > 최근 교육부가 국립대의 법인화를 강력히 추진할 의사를 비침에 따라 국립대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들은 국립대 법인화를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대학을 경영 위주의 경제주체로 파악하는 것이라며 반박한다. 그 이면에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줄어들고 소속 교직원들의 신분보장이 약해진다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국립대측이 법인화를 반대하는 갖가지 주장의 전제가 되는 것은 국립대와 사립대는 목적과 수단이 다른 별개의 교육기관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국립대는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과연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은 다른 존재인가를 자문해보아야 한다. 내 생각에는 국립과 사립은 오로지 완전한 경합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학생선발에 있어서도 양자가 다같이 이른바 점수 높은 학생 유치에 전념할 뿐 국립이라고 하여 특별히 저소득층 학생에게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립 서울대는 사회 상위계층의 자제들이 주로 들어감으로써 가난한 자의 세금으로 이들의 등록금을 보조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 또한 국립은 흔히 기초학문에 책임있다고 말들은 하지만 현재 국립과 사립의 전공의 개설과 운영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곧 도입될 일종의 직업학교인 로스쿨에 대해서도 오히려 국립대학들이 사립을 제치고 이를 떠맡겠다고 나서고 있다. 또 유수한 사립대들도 기초학문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현실에서 학문의 역할분담 운운은 수사에 불과하다. 이처럼 양자간 아무런 역할의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국립은 국가기관으로서 한국은행의 국고를 꿰고 앉아 등록금을 덤핑함으로써 고등교육 시장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지방의 많은 사립대학 재학생들이 자퇴하고 이웃하고 있는 국립대학에 편입하고 있다. 단지 등록금이 더 싸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는 마치 삼성이나 LG전자가 TV를 100만원에 만들어 파는데 국가가 국영전자회사를 만들어 국고보조를 받아 비슷한 제품을 50만원에 내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왜곡된 국·사립 이원체제가 우리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대학사회에 경쟁체제가 조성돼야 한다. 그러나 외부적 조건에 의해 전국단위에서는 국립서울대가, 지역단위에서는 지방국립대학이 사립대에 대해 군림하는 체제에서는 참다운 경쟁이 일어날 수 없다. 오로지 국립을 모델로 한 획일적 기준에 의한 서열화가 조장될 뿐이다. 이제 국립대 법인화의 도입은 이러한 반경쟁적 독점체제를 깨뜨리고 대학사회에 진정한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첫걸음로서 의미가 있다. 만일 국립대학들이 굳이 국가기관이라는 보호막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그들의 역할과 위상을 변경해야 한다. 세금 내는 국민이면 누구나 아무 때나 가서 배울 수 있는 평생교육기관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고 수월성을 추구하는 경쟁체제의 일원이고자 한다면 자발적으로 국립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대학의 자율성을 높여 진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도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나아가 국립대 법인화는 국가의 대학에 대한 관리체제를 종식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하나의 대학이 있고 국립대는 직영점,사립대는 대리점이라는 말이 나오는 지경이다. 앞으로 국가는 대학을 운영하거나 간섭하지도 말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마련해 줌으로써 본래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대학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