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사현장을 가보니] (下) 법과 원칙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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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노동현장에는 법과 원칙이 살아 있다.
미국에서 막무가내식 노동운동을 벌였다가는 해고 당하기 십상이다.
미시간주립대 노동대학원의 데일 벨만 교수는 "몇 년 전 한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수백일간 파업을 벌였을 때 병원측은 이들을 모두 해고시키고 다른 인력으로 대체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고 해고된 간호사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인 일도 없다.
투쟁을 해도 복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고되는 순간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한다.
원칙에 입각한 사용자의 단호한 대응이 노동현장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1981년 일어났던 연방항공청 관제사 파업은 미국이 얼마나 철저히 법과 원칙에 입각해 실천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벨만 교수는 "관제사 1만3000명이 파업을 벌였을 때 레이건 행정부는 복귀 명령을 거부한 1만1500명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해고 조치를 단행했다"며 "그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노동운동은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벨만 교수와 함께 인터뷰를 한 마이클 무어 미시간주립대 교수는 "노동운동이 큰 손실을 가져다 주는 사건을 경험하면 호전적 노조도 바뀌게 돼 있다"며 "노조가 타격을 입지 않으려면 합리적 노동운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무노동 무임금원칙은 노동현장에서 철칙처럼 지켜지고 있다.
노조 전임자 임금은 기본적으로 조합원이 낸 기금에서 충당된다.
노조가 회사에 전임자 임금을 대신 내달라며 파업을 벌이거나 압박하는 일은 아예 없다.
노조원이 3000명에 달하는 GM 랜싱공장의 경우 노조전임자는 지부장,회계 담당,산재 담당 등 3명에 불과하다.
노조원 1000명당 1명꼴로 전임자를 두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노조전임자 1명당 노조원이 166~179명인 것에 비하면 천양지차다.
물론 이들의 임금은 전액 노조에서 지급하고 있으며 노조사무실도 공장 밖에 있다.
마크 스트롤 전미자동차노조(UAW) 602지부 운영위원(GM랜싱공장 소속)은 "노조전임자 임금을 노조에서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그래야 노조도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입장에서 노동운동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GM랜싱공장 내에는 노조 소속의 각종 위원회가 있다.
우리로 치면 노사협의회와 같은 조직이다.
여기에는 모두 70명이 소속돼 있어 교육,전직,제안,신제품 개발,품질관리,작업장 안전 등의 업무를 회사측 간부와 공동으로 수행한다.
어떻게 보면 회사가 할 일을 노조가 대행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에 대한 임금은 회사에서 준다.
전임자의 임금을 회사에서 지급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노조집행부와는 하는 일이 다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노조전임자가 전무한 사업장도 있다.
필라델피아주 앨런타운시에 위치한 에어프로덕트사의 경우 전국 14개 사업장에서 1200명이 노조에 가입해 있지만 노조전임자는 한 명도 없다.
이 회사의 폴 호프만 인적자원부장은 "장치산업이라는 특성상 많은 인원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데다 무노동 무임금원칙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어 노조가 전임자를 두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는 수당과 관련해 독특한 제도가 있다.
관리직 공무원 등 화이트칼라는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는 근로자(exempt worker)로 분류돼 있다.
능력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수당을 받는 게 불합리하다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능력보다는 노동의 투입량에 따라 생산성이 결정되는 생산직 비서 등의 직종은 연장근로수당을 받는 근로자(non exempt worker)로 분류된다.
대신 화이트칼라는 성과급을 적용받지만 생산직 등은 성과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랜싱(미 미시간주)=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