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웅 국방장관이 며칠 전 기자들을 만났다. 13일 국방개혁안의 공식발표를 앞두고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 영국의 국방정책 전문가인 데이비드 추터의 말을 빌려 국방개혁 성공조건으로 '정부 의지''지속성 확보''우호적 여론' 등 세 가지를 들었다. 추터는 '국방개혁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원제:Defense Transformation: Short Guide to the Issues)'의 저자로 이 책은 한때 우리 국방부 간부들의 필독서였다. 군의 문민화 방안 등을 담은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윤 장관에게 일독을 권해 국방부가 아예 한국어판으로 발간했을 정도였다. 그런 추터가 최근 세미나 참석차 방한해 국방개혁 성공 조건을 들려줬으니 윤 장관의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실제 윤 장관은 추터가 조언한 성공 조건에 크게 공감했다. 국방개혁의 지속성 확보와 관련,윤 장관은 이번에 국방개혁안을 법제화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기자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국방개혁 내용을 국민들에게 함축적으로 전달할 구호(표어)와 관련,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내달라고 주문했다. 윤 장관의 말대로 국방개혁 성공을 위해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을 더 보탰으면 한다. 무엇보다 예산확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2020년까지 국방개혁을 추진하려면 680조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이 천문학적인 돈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 안대로 병력 18만명과 4개 군단,20여개 사단을 줄이고 장군 자리 50여개를 없애도 이 재원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단적인 예로 전문가들은 사단 20여개를 줄인다 해도 절감액은 연간 5조4400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예산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국방부는 이를 뒷전으로 미뤄놓고 있다. 재원조달 방안에 대해 앞으로 해당 부처와 협의하겠다고만 했다. 또 "2020년까지 매년 11.1%의 국방비 증가가 이뤄진다면 예산확보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국방개혁 관련 보도자료의 맨 첫장에 "(노 대통령께서) 국방개혁을 위한 예산은 적극 지원하겠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적어놨다. '대통령의 말씀'이 국방부 낙관론의 배경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산확보방안을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하나의 성공조건은 군 내부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특히 우리 군을 이끌 중간 간부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개혁의지만 앞세우다보면 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군은 사기를 먹고사는 집단임을 명심해야 한다. 윤 장관은 그동안 군 안팎에서 국방개혁의 적임자로 평가받아 왔다. 청와대 국방보좌관을 지낸데다 1990년 해군 준장 시절 군구조개선위원회(일명 8ㆍ18위원회)에 참여해 당시의 국방개혁을 추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윤 장관은 당시 '8ㆍ18 국방개혁'이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번 국방개혁이 8ㆍ18국방개혁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예산확보와 군내부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김수찬 사회부 차장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