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지의 시장' 쿠바를 가다 ‥ "잘사는 집엔 한국산TV"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2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쿠바 수도 아바나 23번가.
보건부 석탄부 사회노동부 등 관공서들이 밀집한 이곳 4차선 도로엔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미국제 뷰익,옛 소련제 라다 등 중고차들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질주한다.
이방인들의 눈엔 중고차라기보다는 곧 폐차를 앞둔 고물차에 가깝게 보이는 자동차다.
미국의 봉쇄 정책이 지속되고 있는 쿠바에선 이런 골동품급 차량들을 쉽게 볼 수 있다.
< 사진 :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민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무료한 오후를 지내고 있다.미국의 봉쇄정책 탓에 경제 수준이 낮은 쿠바에서는 폐차 직전의 고물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쿠바 정부가 유류 부족으로 개인의 차량 소유를 엄격히 제한한 때문이다.
"1959년 혁명 이전에 구입한 차량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어요.
새 차를 살 수 없기 때문에 부품을 고치고 엔진을 디젤로 교체하면서 40년 이상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허다하죠."(회사원 호세 아리요사 페레즈)
이런 차량이 넘쳐나고 있는 곳이지만 거리에선 한국산 자동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관공서들이 밀집한 23번가나 신흥 중심지로 부상 중인 리라마르 지역에선 현대의 아토스 엑센트 등 소형차들이 주차장에 즐비하다.
현대자동차의 공식 딜러인 토크마잔그룹의 바헤 토크마잔 사장은 "연간 3200대 정도 되는 신흥 신차 시장에서 현대차는 지난해 4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면서 "올 들어 8월 말까지 벌써 900여대가 팔려나갔다"고 말했다.
캐나다계 기업인 토크마잔그룹은 아바나,산티아고 데 쿠바,보아 등 3개 지역에 부품 창고를 갖추고 쿠바 전역에서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이 회사의 올해 현대차 판매 목표는 1500대에 이른다.
판매 차량의 80%는 트렌스투어 쿠바투어 등 국영 렌터카회사에 판매돼 외국인이나 현지인들에게 임대되고 있다.
조영수 KOTRA 아바나 무역관장은 "쿠바 사람들을 만나 '코레아노(coreano)'라고 소개하면 세 명 중 한 명은 어김없이 '윤다이(현대의 스페인어 발음)'를 외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고 말했다.
자동차뿐만 아니다.
전자제품 상점들이 널려 있는 리라마르 지역에선 삼성 LG 등 한국 브랜드들이 파나소닉 소니 등 일본 브랜드를 제치고 매대 중앙에 위치해 있다.
쿠바 최대의 NGO인 호세 마르티 문화원의 에라스모 라스카모 부원장은 "LG는 고온다습한 쿠바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제품을 만드는 것 같다"면서 "중산층이라면 한국산 TV 냉장고는 하나 이상 갖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대리점을 통해 판매되는 LG 제품의 경우 지난해 전년 대비 20% 성장한 1000만달러어치나 판매됐다.
지구상에 남은 몇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한국산 제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탓에 아직 시장 규모는 미미하지만 한국산 자동차와 전자제품은 파나마 멕시코 등 제3국을 거쳐 쿠바 시장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KOTRA가 이날 10년간의 노력 끝에 아바나 무역관을 개설한 것도 향후 개방이 진행될 경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다.
조영수 관장은 "아직 쿠바의 경제 수준은 낮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며 "기업들이 미수교 국가에서 마음 편하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아바나(쿠바)=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